[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28년 후’는 ‘뛰는 좀비’의 원조 맛집 영화라 부를 만하다. 공포를 점진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이 꽤 흥미롭다. 다양한 좀비들의 비주얼과 더불어 인류 존재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냈다. 영화 ‘28일 후’(2002) 23년 만에 선보이는 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왜 컸는지를 알게 해준다.

19일 개봉한 영화 ‘28년 후’는 바이러스로 절멸 직전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섬에 고립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첫 장면부터 압권이다.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텔레토비를 보고 있다. 이후에 닥칠 장면에 대한 상상과 따스한 텔레토비의 미소가 대조되면서 스산한 기운이 스크린을 감싼다. 이윽고 문을 열면서 시작되는 참혹한 좀비의 살육은 고개를 슬쩍 돌려야 할 만큼 잔혹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화면 교차 방식으로 불쾌감을 고조시킨다. 미국 배우 테일러 홈스가 1915년에 낭독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부츠’를 낭독하는 음성을 삽입했다. 20세기 초 보어 전쟁 중 영국 보병 행진 장면과 영화를 교차시키면서 불안한 감정을 조성한다. 불균질한 화면과 공포감을 강조하는 미디 음악이 결부되면서 기존 공포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전반부 서사는 비쥬얼적 잔혹함과 서사적 공포가 두 개의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나아간다. 12살 소년 스파이키(알피 윌리엄스 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아버지 제이미(애런 존슨 분)는 단 한 번도 섬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아들을 데리고 마침내 좀비 사냥을 하러 나선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을 이용해 물때를 맞춰 나가기에 한 번 나가면 물길이 열릴 때까지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

이런 제한성이 영화를 쫄깃하게 만든다. 다시 돌아오려면 일정 시간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토에 나가 사냥을 시작하면서 좀비는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기어다니며 생활하는 슬로우 로우는 활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스테로이드로 진화해 ‘알파’로 분화한 좀비는 제압이 애당초 불가능하다. 동물의 머리를 뽑아 척추까지 들어 올리는 모습은 자못 압도적이다.

전작 ‘28일 후’가 팬데믹 이후 무너져 내려가는 영국을 보여줬다면, ‘28년 후’는 황폐해진 지구를 다루는 아포칼립스 성격을 띤다. ‘28일 후’는 도시가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이지만, ‘28년 후’는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시 자연으로 돌아간 형태를 띤다. 그 때문에 광활한 들판 위에서 좀비 떼가 창궐해 뛰어오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쥘 만큼 공포스럽고 감염에 대한 공포를 자극한다.

사냥하는 장면에선 체험적 공포도 선사한다. 시간이 멈춘듯한 ‘불릿 타임 기법’으로 1인칭으로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VR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28년 후’의 후반부는 우리가 익숙한 ‘월드 워 Z’(2013) ‘부산행’(2016)과 같은 오락적 쾌감에선 벗어나 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후 펼쳐질 3부작의 시작점이라 그렇다. 좀비가 낳은 감염되지 않은 아기를 인류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 팬데믹 이후 숱한 죽음 앞에 인류가 어떤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 묻는다. 인류, 가족, 죽음 메시지를 전하려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감안하고 봐야 하는 작품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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