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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야구는 왜 9회까지 할까. 여러 감독과 선수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무대에 오르는 이들이 그 무대가 왜, 어떻게 생겼는지 알 필요는 없는 법.

그래서 야구 관련 서적과 인터넷 서핑을 통해 9회로 한정된 이유를 찾아봤다. 축구는 11명이 하는데 패널티 킥의 거리는 11m고, 야구는 9명이 하는데 9회까지 한다. 5인제 농구는 5반칙이면 퇴장을 당한다. 이런 것들과도 ‘연관이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품고서 말이다.

우선 야구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야구의 원형은 영국이나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북미 대륙으로 건너오며 가져온 크리켓, 라운더스와 같이 공과 방망이를 사용하는 경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경기들이 북미 대륙, 즉 미국에서 조금씩 발전과 변형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야구가 되었다는게 정설이다.

(현재 크리켓은 영국의 국기(國技)로, 11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타원형의 그라운드에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면서 방망이로 공을 쳐서 득점을 겨룬다. 영국을 비롯한 과거 영국의 식민지에서 활성화 되어 있다. 영국 배우 엠마 왓슨이 즐긴다는 라운더스는 규칙이 야구에 더 가깝다. 한 팀에 9명씩 1이닝 9아웃으로 2이닝 경기로 치러진다. 야구의 베이스와 같은 포스트가 4개 있고 4번째 포스트에 도달하면 득점이 인정된다.)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은 1845년 미국 뉴욕의 알렉산터 카트라이트가 만든 니커보커 규칙에서 근거한다고 하는데, 1953년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카트라이트가 근대 야구의 발명가임을 인정했다. 야구기자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헨리 체드윅도 “야구는 영국에서 성행했던 크리켓과 라운더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18세기 중반 미국으로 넘어온 영국인들이 이 경기를 하며 미국으로 전파됐다”고 했다. 체드윅은 지금의 야구 기록법과 경기 성적표를 창안하며 데이터에 기반하는 야구의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에도 야구는 9회까지 했을까.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 보니 충북도립대학에서 전자통신을 가르치는 조동욱 교수 역시 “왜 야구는 9회까지 하는 것일까” 하는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조 교수는 기고를 통해 “원래 야구는 횟수를 제한한 경기가 아니라 점수를 제한한 경기였다. 초창기 야구는 21점을 내는 팀이 이기는 것으로 초창기에 투수가 스트라이크 3개를 던지면 1아웃이 되는 것도 없고, 4구도 없었으니 야구 경기 하나 끝내려면 경기하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생지옥이나 다름 아니었을 것 같다”고 했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점수제로 인해 경기 시간이 길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경기 규칙 개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12진법의 영향을 받아 타순이 3회전 이상 돌아가는 9회(연장은 12회, 15회)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즉 타자 중에 아무도 출루를 하지 못하는 퍼펙트 경기가 진행된다고 해도 9회까지 하면 1번 부터 9번 타자까지 9명의 타자가 3번씩 공평하게 타격 기회를 가지게 된다. (9회가 아닌 8회나 10회까지 야구를 한다면 그 기회는 타자에 따라 2번 또는 4번으로 배분되며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야구는 스트라이크 3개면 1아웃, 그리고 3아웃이면 이닝이 교체되는 12진법을 적용했을까. 조 교수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경기 시간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도 시간 및 기타 단위에서 12진법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시계도 12시까지로 되어 있어 12진법, 1다스는 12개, 1피트는 12인치에 해당하는 것 등이 좋은 예이다. 또한 10진법의 10이 2와 5의 배수인 것에 대하여, 12진법의 12는 2, 3, 4, 6의 배수이므로 수의 표시법으로서는 12진법이 10진법보다 우수하다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1975년에 화폐단위가 10진법으로 바뀌기 전에는 1실링(12펜스), 1파운드(12실링) 등 12진법을 사용한 것도 예가 된다.

또한 야구가 12진법에 따라 이닝 수가 정해진 것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었다. 오늘날 야구를 봐도 21점을 내는 건 쉽지 않은데, 현재의 규칙과 달리 19세기엔 투수가 던지는 볼을 카운트 하지 않고 볼넷도 없었으니 21점을 내기란 더 힘들었을 터. 특히 경기가 투수전 양상으로 흐른다면 하루 종일 야구를 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한번 경기를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불만을 터뜨린 사람은 선수나 감독이 아니었다. 관중도 아니었다. 바로 요리사들이었고 이들에 의해 야구 규칙이 바뀌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식과 상식을 넓혀주는 숫자 여행(문미화 오미영 지음)을 보면 “요리사들은 야구시합이 끝나면 상대 팀을 축하 연회에 초대했는데 언제부터 요리를 준비해야 할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애가 많이 탔던 모양이다. 그래서 요리사들은 게임이 끝나는 시간을 미리 예상할 수 있게 야구 규칙을 개정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야구는 9회까지 하게 되었다. 12진법의 영향을 받아 타석이 3회전 이상 될 수 있는 9회가 되었다. 이 12진법에 따라 삼진이면 1아웃이고 3아웃이면 이닝을 체인지하는 규칙도 차례로 생겨났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들 요리사들은 1845년 미국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뉴욕 니커버커팀 전속으로, 따뜻한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야구 경기가 끝나는 시간을 알아야 했다. 그 결과 야구는 점수 제한이 아닌 횟수제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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