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어리다고 무시해선 안 된다. 어린이 역할을 연기한다는 의미의 아역(兒役)의 위상이 달라졌다.
수 년전만 해도 단순히 주연 배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것에 그쳤으나, 최근 독립적인 캐릭터로서 서사를 이끌거나 중요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몇몇 아역 배우는 성인 배우 못지않게 복잡한 감정선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 내며 주목받고 있다.
◇연기력 인정 받은 아역 배우들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 유나다. 2011년생인 그는 SBS ‘굿파트너’에서 차은경(장나라 분)과 김지상(지승현 분)의 딸 김재희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유나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란에 빠진 재희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면 나머지 한 명은 상처받겠죠?”라는 대사는 유독 회자됐다. 부모의 이혼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이 나왔다.
또 유나는 극 중 엄마와의 갈등 끝에 오열하는 장면에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서러운 감정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애플 TV+ ‘파친코’, ENA ‘유괴의 날’ 등 좋은 연기를 보여준 유나는 ‘굿파트너’에서 시청자에 분명히 각인을 찍었다.
2011년생 정현준도 시선이 가는 아역이다. 정현준은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선균 분) 부부의 막내아들 다송이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송이는 작품에서 귀신을 봤다는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라는 복잡한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족 내에서 큰 관심을 받는 인물이다.
정현준은 이 역할을 통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표정 변화와 성숙한 연기력을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tvN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는 은결(려운 분) 역을 맡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수어 연기와 감정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정현준은 최근 배우 한소희가 소속된 9아토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2009년생인 배우 김강훈도 일찍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김강훈의 존재감은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빛났다.
김강훈이 연기한 필구는 동백(공효진 분)의 아들이다. 필구는 초등학생이지만, 자신을 홀로 키워주는 엄마를 위해 일찍 철이 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김강훈은 필구의 깊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른들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복잡한 감정을 실감 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눈물 버튼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도 고등학생 권혁수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는 31살의 최이재(서인국 분)의 영혼이 들어온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과거 보다 많아진 콘텐츠…이제는 독립된 캐릭터로 인정받는 시대
최근 아역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이에 따른 콘텐츠 변화와 직결된다.
과거 지상파 중심의 방송 환경에서는 제한된 캐릭터로 인해 아역 배우들이 성장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OTT 플랫폼과 같은 새로운 유통 채널의 등장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제작되면서 캐릭터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들이 활약할 기회도 늘어났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작품 캐릭터가 다양해졌다. 이 때문에 아역배우도 연기력을 뽐낼 기회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 역시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아역 배우들도 독립된 캐릭터를 가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뛰어난 연기력과 해석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게 됐다. 앞으로 그런 기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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