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연기 노하우는 없어요. 그럴듯하게 사기를 치는 게 배우의 일이죠. 허구의 삶과 인간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게 제 일이잖아요. 외로운 순간이기도 하고요. 늘 절벽에 서 있어요.”

경력 35년 차 베테랑 배우 최민식은 연기의 속성이 외로움이라고 했다.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야 할 때는 그 누구의 손을 거치지 않는다. 아무리 감독과 대화하고 정보를 쌓고, 디렉션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그 임무를 해내야 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22일 개봉한 새 영화 ‘파묘’에선 30년 넘게 땅의 가치를 매기며 살아온 풍수사 김상덕을 연기했다. 흙을 직접 먹어보고 느낀 질감으로, 양지와 악지를 따지는 풍수사다.

땅 냄새만큼 돈 냄새를 좋아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우리 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는 인물이다. 최민식은 또 입체적인 상덕을 만들어냈다.

최민식은 “장재현 감독이 우리 땅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했다. 뽑아내고 약 발라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국뽕’도 아니었다”며 “인간이 코너에 몰렸을 때 신(神)을 찾지 않나. 편협한 사고에 갇힐 수 있는 소재를, 멋있게 만드는 장 감독이 궁금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고은은 손흥민, 이도현은 김민재”

1962년생인 최민식은 무속신앙에 익숙하다. 모든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속신앙은 늘 가까이 있었다. 열 살 무렵, 폐결핵으로 목숨이 오고 가던 때 최민식을 살린 건 의술이 아닌 정성이었다.

“지금도 사주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어요. 의사들도 다 포기했는데, 어머니가 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한 거예요. 희한하게 나았어요.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죠. 살면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풍수 인테리어 같은 것도 있잖아요.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말고, 받아들이자는 주의예요. 진짜든 아니든 수천 년 역사가 있잖아요.”

장재현 감독은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실제 같은 기운을 원했다. 모든 영화마다 마련되는 콘티도 없었다. 놀랍게도 배우들의 눈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김상덕은 새로운 땅을 만나면 늘 집중했다. 그때 최민식의 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스크린을 넘어 관객을 압도했다.

“무속인들도 그렇고,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빛이 돌변할 때가 있어요. 풍수사도 반 무당이에요. 지식만으로 흉지와 길지를 아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몸에 다 안테나 같은 게 있잖아요. 자연과 영적인 교감을 할 때 뭔가 달라지는 포인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시선에 집중했어요.”

‘파묘’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가 앙상블이다. 국내에 앙상블상이 있다면, ‘파묘’에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민식과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연기 합이 엄청나다. 최민식은 ‘묘벤져스’라고 했다.

“김고은은 ‘파묘’의 손흥민이고 이도현은 김민재예요. 저는 벤치에서 음료수 나르는 사람이죠. 상덕이랑 영근(유해진 분)이 까불어봤자 칼 들고 휘저으니까 게임 끝나잖아요. 배우 중에 예쁘고 멋진 것만 생각하는 아마추어들이 있는데, 고은이는 몹쓸 거에 갇히지 않고, 용감하고 도전적이에요. 자기를 내려놓고 몰입해서 연기한다는 건 선배 입장에선 대단하다고 봐요.”

◇“35년 돌아볼 필요 없어, 장르는 멜로가 체질”

1989년 KBS2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최민식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다. 연극과 드라마, 스크린, 그리고 최근 들어 OTT까지 두루 섭렵했다.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악마를 보았다’(2010),‘범죄와의 전쟁’ (2012), ‘신세계’(2013), ‘명량’(2014) 등 숱한 명작을 남겼다.

“내가 느그 서장이랑 마, 사우나도 가고”라는 ‘범죄와의 전쟁’ 속 대사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는 ‘명량’의 대사는 아직까지 국민 ‘밈’으로 회자되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안 돼요. 과거의 영광만 돌이켜보는 것은 주저앉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는 앞으로 할 게 많고 욕심도 많아요. 제가 아직 만져보지 못한 세계가 많을 거예요. 이제껏 겪어온 세상은 앞으로 겪을 영화적 세상에 빙산의 일각도 안 돼요.”

최민식이 가장 만져보고 싶은 세상은 멜로의 세계다. 실제로 최민식은 ‘파이란’(2001)을 제외하곤 정통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해본 적이 없다.

“멜로에 욕심이 있는데, 왜 안 들어올까요? 이성의 사랑을 넘어서,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사람이 사람에게 공감하고 교감하는 걸 표현하고 싶어요.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겠죠. 궁금한 게 많아요. 영화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다 협업이에요.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해요. 그걸 통해서 세상을 배워요. 아직 못 배운 게 많아서 더 오래 하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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