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사직=김민규기자] “팬들의 선행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인성도 실력도 월드클래스다. 늘 한결같이 자신을 낮추며 겸손한 모습이다. 승리의 기쁨보다도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단 다짐으로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월드 스타다. 우리네 전설 ‘페이커’ 이상혁(27)이 주인공이다.

T1은 12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준결승에서 중국(LPL)의 1시드 징동 게이밍(JDG)과의 대결에서 ‘승·패·승·승’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T1은 오는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웨이보 게이밍(WBG)과의 결승전에서 7년 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경기 후 ‘페이커’ 이상혁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분명히 우승하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내 목표는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면 우승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JDG는 T1에 패하며 LoL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 슬램’ 달성에 실패했다. JDG는 LPL 스프링·서머 시즌 모두 왕좌에 올랐고,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역사상 유례없는 골든 로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상황.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T1에 무릎을 꿇으며 그랜드 슬램도 물거품이 됐다.

이상혁은 “징동 게이밍이 그랜드 슬램을 노리고 있는 강팀이기 때문에 맞붙게 돼서 굉장히 즐거울 것이라 기대했다”며 “실제로 경기를 했는데 재미있는 승부가 펼쳐져서 만족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페이커’ 아지르의 ‘슈퍼 토스’→JDG를 띄워 보냈다

JDG와의 3·4세트에서 이상혁의 아지르가 슈퍼플레이를 펼치며 결승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세트에선 이상혁의 아지르가 정확하게 JDG의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의 바루스를 배달하면서 T1의 에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넥서스로 향해 적진에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매치 포인트’를 달성했다.

4세트 초반 T1은 JDG에 흐름을 내줬지만 후반 교전에서 연이어 승전보를 올리며 경기를 뒤집었다. 특히, 용 앞 교전에서 이상혁의 아지르가 다시 한번 ‘슈퍼 토스’를 시전하며 대승을 거두면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T1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JDG의 넥서스를 파괴하며 결승행 열차에 탑승했다.

이상혁은 “우리가 불리하던 경기였고, 그 전에 실수가 많이 나오며 힘들어져서 아쉬운 경기였는데 운이 좋게 잘 들어가기도 했다. 또 조합적인 상황상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많았기 때문에 돋보인 것 같다”며 “아지르 같은 경우는 우리가 기존에도 많이 준비했던 픽이라 충분히 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팀원들도 잘 맞춰서 해줬기 때문에 잘 드러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팀원들 모두 롤드컵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다 보니 경기력이 더 발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깨어난 ‘LPL 킬러’ 본능

‘LPL 킬러’ 본능이 깨어났다. T1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롤드컵에서도 LPL 팀들을 연이어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대니’ 양대인 감독이 이끄는 WBG만 제압하면 정상에 등극한다. T1과 이상혁은 2016년 이후 7년 만에 네 번째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품게 되는 것.

이번 롤드컵에서 T1은 LPL 2시드 빌리빌리 게이밍(BLG)을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8강에선 LPL 3시드 리닝 게이밍(LNG)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했고, 준결승에선 1시드 JDG마저 꺾었다. 4시드 WBG만 남았다.

‘LPL 킬러’란 별명에 대해 이상혁은 “어쩌다 보니 대진에서 LPL 팀을 모두 만나게 돼서 그렇게 얘기를 해주는 것 같다”며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느 지역을 만나느냐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 팀이 어떤 팀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T1은 지난해 롤드컵 4강에서도 JDG를 꺾고 결승 무대를 밟았다. 올해와 같은 상황. 그는 “작년에는 JDG가 리그 우승을 많이 한 팀은 아니었고 LPL에서도 그렇게 강팀이 아니었다면 올해 JDG는 강력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실제로도 굉장히 잘하는 팀이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이겼다는 게 그 부분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것 같다”고 밝혔다.

LPL 4시드로 결승까지 올라온 WBG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게다가 WBG는 한때 T1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양대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상혁은 “WBG가 선발전부터 이기고 올라온 팀이다 보니깐 기세적으로 분명히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맞붙었을 때 JDG와의 경기만큼 굉장히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 같다”며 “나 스스로 이런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양대인 감독님 같은 경우에 같은 팀으로 있었고, 이번에는 상대 팀으로 만나서 즐겁게 경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월드 클래스의 감사함“‘쓰레기 줍기’ 등 팬들의 선행 덕분”

실력도 인성도 월드 클래스다. 상대를 존중하며 팬들을 향한 고마움도 안다. 특히, 최근 회자된 것이 T1 팬들의 ‘만다라트 차트’ 선행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만다라트 계획표를 짜서 운동과 취미 활동, 선행 등을 해온 데서 본받은 것이다. 더욱이 오타니는 자신이 선행을 하면 운도 따라줄 것이란 믿음에서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T1의 롤드컵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쓰레기 줍기 등 선행을 하며 응원전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T1에 진심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런 팬들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이상혁은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를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팬들이 이렇게 선행을 베풀고 하는 것이 나는 분명히 경기에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팬들 덕분에 우리가 (JDG를)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JDG와의 준결승 끝난 후 이상혁의 인성과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일이 화제가 됐다. 경기 직후 한 카메라 기자가 엄지를 치켜들고 있는 이상혁에게 엄지를 아래로 내리는 ‘징동 다운’ 포즈를 요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상혁은 카메라 기자의 요구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금 엄지를 치켜세웠다. 상대방을 향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모습이 영상에 잡힌 것.

이상혁은 “팬들이 우리로 인해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더 나은 영감을 받고 그런다면 나는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 다음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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