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황혜정기자] “정말 꿈만 같아요. 이 선수들, 선배님들, 형들과 그라운드에 함께 설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신기해요.”

매서운 눈빛으로 공을 노려보며 야무지게 타석에 서서 또박또박 안타를 쳐 나가던 한 무명 선수는 인터뷰 요청 앞에선 수줍은 청년으로 돌변했다. 키움 히어로즈가 올 시즌이 끝나기 전 얻은 외야수 박수종(24)의 이야기다.

박수종은 지난해 육성 선수 신분으로 키움에 입단한 선수다. 충암고-경성대를 졸업한 박수종은 프로 지명에 실패한 선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육성선수로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박수종은 지난 7월11일 1군에 처음으로 올라와 다음날인 12일 KT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렀다. 9회말 주성원의 대주자로 첫 1군 경기장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7월21일 말소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타석에 서지 못했다.

박수종이 다시 1군에 올라온 건 지난 9월1일이다. 이때부터 대수비·대주자로 출장 기회를 서서히 늘린 그는 1군 무대 8경기 만에 첫 타석을 소화했다. 9월9일 한화전에서 박수종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지난 9월21일 NC전에서 8번타자·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한다. 첫 선발 출장에서 프로 데뷔 안타까지 생산했다. 22일 한화전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첫 타점을 올림과 동시에 멀티히트를 뽑아냈다.

3일 현재까지 박수종은 19경기 출장해 타율 0.455(33타수 15안타) 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48을 기록했다. 15개 안타 중 3루타만 2개다. 발이 빨라 2루타성 안타에도 3루타를 만들어낸다.

최근 7연속경기 선발 출장한덕분에 키움팬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난 3일 잠실구장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박수종은 최근 맹타를 휘두른 비결로 “그저 자신감 있게 타석에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박수종은 “야구란게 잘하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타석에서 그저 후회 없이 치려고 하다 보니 결과도 따라온 것 같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린 날 두 차례 프로 지명 실패로 인한 굴곡진 인생사가 느껴졌다.

그러나 육성 선수로 프로 입단에 기어코 성공해 이를 갈았다. 박수종은 “2군에서 매 순간 내가 1군 그라운드에 서 있는 상상을 하며 그 시기를 버텼다. 1군에 막상 올라오니 정말 꿈같다. 이 선수들, 선배님들, 형들과 이렇게 그라운드에 함께 설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신기하다”며 웃었다.

키움에서 현시점 가장 잘 치는 타자가 박수종이다. 키움 홍원기 감독은 “박수종이 최근 활약으로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2군에서 공격·수비·주루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서 1군에 콜업했고 그동안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본인에게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기량을 펼치더라. 그 말은 그동안 준비를 잘했다는 의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 감독은 “내년에 외야를 구성하는데 큰 옵션이 될 것 같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대수비 자원 정도로 생각한 박수종이 타석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1번타자로 선발 출장시키고 있다. 박수종은 “프로 선수라면 부담감 속에서도 결과를 내야 한다. 리드오프라는 생각보단, 그저 첫 번째 타자란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강점은 ‘간절함’ 같아요.”

두 차례 프로 지명 실패는 박수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11라운드에서도 뽑히지 못한 그는 끊임없이 프로 무대를 두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육성선수 입단 1년 반 뒤 1군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꿈에 그리던 1군에 올라와서도 몇 번 주어지지 않았던 작은 기회를 잡아냈고, 감독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간절함이 그를 달리게 했다.

그러나 박수종도 잘 안다. 현재 타율 4할을 언제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 타율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타율이 아니잖나. 나는 떨어질 타율밖에 없어서 오히려 불안감은 없다. 그저 항상 재밌고 자신 있게 타석에 들어가려 한다. 내년 시즌엔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좋았을 때와 좋지 않았을 때 편차를 줄이고 싶다”고 다짐했다.

무명 선수의 깜짝 활약으로 아직 키움팬 사이에서 박수종 응원가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박수종이 타석에 설 때면 응원석에선 ‘박수종 안타!’ 정도의 외침만 들려온다. 박수종에게 어떤 응원가를 듣고 싶냐고 물으니 그는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원하는 곡은 특별히 없고, 다 같이 떼창을 할 수 있는 곡이면 뭐든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워낙 좋은 응원가가 많아서, 언젠가 내 응원가가 나온다면 나도 저렇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응원가가 생기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고 덧붙였다.

단기 목표는 내년 시즌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어가는 것이다. 장기적으론 한 능력치에 쏠리지 않은 타자가 되는 것이다. 박수종은 육성선수 신화를 쓴 ‘제2의 서건창(34·LG)’을 꿈꾼다. 그의 등번호 역시 서건창의 등번호 14번과 같다.

박수종은 “서건창 선배님이 롤모델이기도 하지만, 2군에 있으면서 박정음(키움 2군 작전/주루)코치님께 정말 많은 걸 배웠다. 특히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내 롤모델은 박정음 코치님”이라고 밝혔다.

최근 사인 요청이 부쩍 늘었다는 박수종은 “항상 감사한데, 모든 분께 다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사인을 해드리면서 사인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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