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민호, 류중일, 정현욱, 선동렬. 사진 | 스포츠서울 DB

프로야구만큼 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많은 스포츠도 없다. 감독이 한 말부터 선수가 한 말, 혹은 팬들이 지어준 말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김별명' 등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같이 선수들에게 붙여준 별명,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 설레발' 등 상황에 따른 유행어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팬들에게 많은 재미를 주는 것은 감독, 선수들이 직접 한 말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표어가 된 것이다. 감독과 선수는 별 생각 없이 뱉은 한 마디가 프로야구 대표하는 말로 거듭난 사례가 적지 않다. 프로야구를 뒤흔든 어록들은 무엇이 있을까


◇ 번트요? 저 강민호인데요 -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


강민호 '번트요? 저 강민호인데요'. 출처 | '프로야구 2K' 광고 캡처


2013년 대한민국 야구판을 뒤흔든 유행어가 탄생했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민호의 '번트요? 저 강민호인데요'다. 당시 강민호는 넥슨 게임 '프로야구 2K'의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에서 강민호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날씬한 모델이 다가와 게임을 지도했다. 이 모델은 "무사 2루 상황이니 번트 작전이 좋겠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민호는 깜짝 놀라며 "번트요? 저 강민호인데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게임상에서 강민호는 삼진을 당하고 고개를 숙였다. 강민호는 중심타자이기 때문에 번트를 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였다. 실제로 강민호는 번트를 대는 타자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수비형 포수가 대세로 자리 잡은 가운데 강민호는 호쾌한 타격으로 공격형 포수의 새 장을 연 선수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광고가 나간 해 강민호의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해 강민호의 성적은 타율 0.235, 11홈런, 57타점을 기록했다. 주전으로 출전한 이래 최악의 성적이었다. 더군다나 그 해는 FA를 1년 앞둔 해였다. 보통 FA를 한 해 앞둔 선수들은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친 경우가 많지만 강민호는 정반대였다. 좋지 않은 성적에 광고 내용이 덧붙여져 '번저강'이라는 말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해 강민호가 부진한 경기를 펼치면 팬들은 SNS와 댓글을 통해 '번저강'을 외쳤다. 어느새 '번저강'은 김태균에 필적할 만큼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민호의 대표 별명으로 자리 잡았다.


◇ '나믿가믿', '못카잘' -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류중일 '나믿가믿'. 출처 | SBS ESPN(현 SBS 스포츠) 방송 캡처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통합 4연패에 도전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은 유행어 제조기로 유명하다. 류중일 감독은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취임 첫해부터 유행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일명 '나믿가믿'으로 '나 믿을 거야, 가코 믿을 거야"의 줄임말이다. 전임 감독인 선동렬(현 KIA 타이거즈 감독)이 뽑아 놓은 용병 라이언 가코를 두고 한 말이다. 류중일 감독은 2월 전지훈련 당시 임용수 캐스터와 양준혁 해설위원에게 가코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며 한 말로 곧바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야구 사이트를 통해 퍼져 나갔다. 류중일 감독 역시 재밌다며 웃음 지었다. 하지만 이 웃음은 곧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기대한 가코의 성적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오른손 거포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가코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결국 가코는 류중일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그해 7월 짐을 쌌다.


류중일 감독의 유행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프로야구를 앞두고 '못카잘'이라는 유행어를 탄생 시켰다. '못카잘'은 '못해도 카리대보다 잘 하겠지'의 줄임말로 새로 영입한 마이너리그 MVP 출신 J.D 마틴을 두고 한 말이다. 2013년 류중일 감독은 부진한 아네우리 로드리게스를 퇴출하고 에스마일린 카리다드(카리대)를 영입했다. 하지만 카리대는 2.1이닝을 소화하고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리그가 끝나도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할 것으로 보였으나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역시나 팔꿈치 통증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팀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으면서 우승 보너스가 자신에게도 나오는지 물어본 사실이 알려져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카리대에 호되게 당한 류중일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마틴에 대해 "못해도 카리대보다 잘 하겠지"라며 역시나 선수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야구 팬들은 류중일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줄임말로 만들어 사용했고 '나믿가믿'에 이은 '못카잘'이 탄생하게 됐다. 마틴은 전반기 5승 5패 평균자책점 5.38로 부진하며 '나믿가믿'에 이어 '못카잘'이 다시 한 번 류중일 감독을 비꼬는 유행어가 될뻔했으나  후반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3.93으로 호투하며 '못카잘'의 덫에서 빠져나왔다.


◇ 야! 웃음이 나오냐 - LG 트윈스 정현욱


정현욱 '야! 웃음이 나오냐'. 출처 | MBC LIFE 방송 캡처


LG 트윈스의 정현욱은 매우 특별한 유행어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20일 삼성이 한화를 상대로 16-3 대승을 거뒀다. 선수들은 벤치 멤버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이때 후배 정현욱은 외야수 최형욱이 웃으며 들어오자 "야! 웃음이 나오냐"라며 후배에게 다소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크게 승리하긴 했지만 당시 삼성은 5연패 중이었고 최형우는 9회 실책성 플레이로 1점을 헌납했다. 이에 정현욱이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고참으로서 한 마디 한 것이다.  그런데 정현욱의 입모양과 옆에 있던 채태인이 눈치를 보는 장면이 TV 화면을 통해 그대로 잡혔고 이를 야구 팬들이 놓칠 리 없었다. 팬들은 정현욱의 입모양을 유추해 "야! 웃음이 나오냐"라는 말로 시작해 "야! 우리 집 안오냐", "야! 우규민 나오냐"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말은 정현욱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정현욱은 '노예' 이미지에서 팀의 군기반장 이미지로 굳혀졌다. 하지만 후일 정현욱은 인터뷰를 통해 군기반장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후배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스타일이다고 밝혔다. 정현욱은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우규민이 있는 LG 트윈스로 이적하며 남들에게 "우규민 나오냐"는 말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 팔 각도 좁혀야 - 기아 타이거즈 선동렬


박찬호(왼쪽), 선동렬. 사진 | 스포츠서울 DB

기아 타이거즈 선동렬 감독은 '팔 각도 좁혀야'한다는 유행어가 있다. 이 유행어는 선동렬 감독이 2012년 국내로 복귀한 박찬호에게 한 말이다. 2012년 4월 1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를 앞두고 선동렬 감독은 박찬호에 대해 "경험 많은 투수이기 때문에 시범경기와 다를 것이다. 조금 더 힘 있고 예리하게 공을 던지기 위해서 던지기 전 팔꿈치 각도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전혀 문제 될 발언은 아니다. 선배로서 국내 무대로 복귀한 후배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KIA의 성적이었다. 당시 KIA의 성적은 5위였다. 시즌 초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이 끝났을 때도 KIA의 성적은 5위였다. 선동렬 감독은 KIA의 명가 재건 임무를 부여받고 부임했지만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성적 부진에 KIA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여기에 다른  야구 팬까지 합세했다. 당시 선동렬 감독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팔꿈치 각도를 좁혀야 한다'는 조언은 선동렬 감독을 비꼬는 유행어가 됐다. 선동렬 감독의 인터뷰가 있는 기사의 댓글에는 언제나 '팔각도 좁혀야'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KIA의 성적이 좋다면 자연히 사라질 말이었지만 '팔각도 좁혀야'는 여전히 많은 팬들이 사용하고 있다.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KIA는 그 다음해 신생팀 NC 다이노스에 밀리며 8위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꼴찌 한화 이글스에 단 4게임 차 앞선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김도곤 인턴기자 inadditio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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