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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경기 중에 투수가 흔들리거나 약간 이상한 낌새를 풍기면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한다. 홈에 앉아 있던 포수도 마운드로 향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 감독이 직접 마운드를 방문한다. 이때 감독이 구심에게 새 공을 받아 쥐고 마운드로 향하면 이는 투수 교체를 뜻한다. 그렇다면 교체가 아닌 경우 이들은 마운드 위에 올라가서 투수에게 무슨 말을 할까.
여기서 잠깐, 이들이 마운드에 ‘올라간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마운드가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 높이가 불과 30cm가 채 되지 않지만,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투수는 그 높이에서 ‘절대고독’과 싸우며 상대타자를 상대한다.
그런데 마운드 위 투수는 경기 중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같은 유니폼을 입은 그들이 그리 달갑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 던지고 있다면 그들은 절대 마운드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야구는 축구, 농구와 달리 감독을 포함해 선수단 전원이 같은 유니폼을 입는데, 이는 그라운드 진입 여부와 관련이 있다). 투수 교체 시에는 “고생했다” 내지 아무 말도 없을 테니 생략하고, 어쨌든 그 투수가 계속 이닝을 책임져야 할 경우에 이들은 마운드에서 투수에게 몇 마디를 한 뒤 대부분 엉덩이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투수도 자신을 에워싼 그들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데 글러브로 입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 오고가는 말을 알 수가 없다. 투수나 야수들이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건, 상대벤치에서 이들의 입모양을 보고 그 내용을 눈치챌까봐 그렇다고 한다. 코칭스태프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곤 하는데, 야구인이 되려면 독화술(讀話術·입술 움직임이나 모양을 보고 내용을 알아내는 것) 정도는 해야 하는지 살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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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글러브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할 정도라면, 무척 중요하고 비밀스런 대화를 나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이에 대해 명투수 출신 김시진 감독은 사람 좋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투수코치 시절 마운드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을 알려줬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이래도 저래도 두드려 맞으니 한가운데 밀어 넣고 가자.”
약간의 반어법이 포함된 말이기에 굳이 부연설명을 하자면 “빨리 맞고 집에 가자”가 아닌 “자신감을 가지고 던져라” 내지 “볼을 던지지 말고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힘껏 던져라” 정도로 보면 된다. 그런데 입을 가리고 하는 ‘비밀언어’ 치고는 좀 실망스럽다. “투구할 때 어느 포인트에 문제가 있으니 그 부분을 고쳐 던져라”도 아니고, “상대타자의 약점은 어디인데, 꼭 이 구질의 공을 던져야 한다”도 아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김시진 감독은 “투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인 주문을 하면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며 “투수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투수코치는 “심호흡을 하라고 시킨다”며 “투수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공이 제구 되지 않으면 평정심을 잃고 호흡이 흔들린다. 그래서 심호흡을 통해 안정을 유도 한다”고 설명했다.
즉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평정심을 가지는 게 투구할 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포수도 마운드에서 투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볼 좋다. 괜찮다”라고 했다. 종합해 보면,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원포인트 레슨이 아닌 심리안정과 자신감 회복이 훨씬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기술적인 보완은 경기 중에 하는 게 아닌 훈련할 때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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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와 포수가 마운드를 향하는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타이밍을 끊고 가는 것으로,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거나 상대 방망이에 난타를 당하는 그 흐름을 자르는 것이다. ‘분위기를 탄다’는 말처럼 야구는 흐름의 싸움으로 이들의 마운드 행차는 투수를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상대타선의 기세를 끊어주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
때로는 투수교체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행동이다. 이들이 마운드에서 실없는 말을 하는 동안 불펜에선 긴박하게 출동 명령을 받은 구원투수가 급하게 몸을 풀고 있는 거다. 감독은 경기전에 그날의 투수운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놓는데,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볼을 남발하거나 난타를 당하면 다음 투수가 미처 준비를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이때 마운드를 방문하는 건, 투수의 몸푸는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2005년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던 오지 기옌(전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은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TV에서 아빠를 볼 수 있게 마운드에 올라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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