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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옥상마다 파란색 물 탱크, 하늘을 찌를 듯한 목욕탕 기둥들이 뚝뚝 서있는 사이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 레고 조각 같은 집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산. 우리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더미. 산에 사는 사람들, 진짜 부산 사람.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다. 목포는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산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산복도로는 그 산의 배를 가른다. 무조건 계단을 딛고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내려갈 수도 있도록 하늘 길이 생겨났다. 멀리 바다를 내려다 보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눈다.
지금부터 딱 50년 전 생겨난 부산 산복도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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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오르니 과거를 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어느샌가 영화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의 제전을 관람하러 많은 이들이 내려간다. 하지만 자칫 번쩍번쩍한 해운대에만 머무르기 쉽다.
사실 해운대야 정말 좋은 곳이지만 그래도 부산의 속살을 느껴보고 싶다면 산에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24일과 25일에는 광안리에서 부산국제불꽃축제도 열릴 예정이니 해운대는 그때 가고, 이번엔 부산의 옛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구 도심권에 눈독을 들여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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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산에는 유독 산기슭 마을이 많을까. 이유는 바로 한국전쟁 때문이다.
20만명 정도가 살던 부산땅에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순식간에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그들이 터전을 잡을 곳이라곤 부산항을 앞에 놓고 병풍처럼 늘어선 산 기슭 밖엔 없었다. 그래서 하나 둘씩 판자로 집을 짓기 시작해 지금같은 산동네가 잔뜩 생겨났다.
범일, 좌천, 감천 등 여러 마을이 산사면을 타고 들어섰는데 이중 대표적인 곳이 초량이다. 부산항과 부산역을 코앞에 둔 마을 초량은 전형적인 부산의 산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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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나눠쓰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이 늘어서고 이삿짐이라도 나를라치면 야윈 두 다리 왜소한 어깨에 지겟짐을 지고 수백개의 계단을 몇번이고 올라야 하는 동네. 삶의 애환이 잔뜩 서린 이곳도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옛모습 그대로 곱게 늙어가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 그 모습이 멋지고 근사한다 말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 초량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부산 사투리. 이바구를 들려주는 이바구 할매를 만나 함께 하늘까지 오르는 길을 걸으며 부산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전쟁 전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온 배는 초량(그때는 부산역이 있던 곳이 바다였다.)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창고라 불렀다. 전쟁 후 북선창고는 남선창고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수산물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군이 옮겨오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 촌이 생겨났고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전국을 돌았다.
◇근대역사와 삶의 애환이 서린 골목길
부산의 근대 문화유산이 가득한 이바구길. 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가 가득한 간판숲을 지나 만나는 첫 이바구 꺼리는 1922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인 백제병원이다. 일본에서 의과대를 나온 최용해(김해 출신이다)는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와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니었을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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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짜리 붉은벽돌 건물로 당시에 가장 높은 부산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병원도 잘됐다. 그러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의 사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다가 ‘치료비 없는 환자가 가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다른데 쓴다’는 악소문이 돌면서 환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이자도 갚을 길 없는 최용해는 끝내 야반도주하고 병원은 망했다. 그나마 백제병원은 커다란 청요릿집으로 변신했다가 예식장으로 바뀌는 등 여지껏 옛모습을 상당히 간직하고 있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근대 역사 문화 갤러리로 채울 계획이다.
남선창고는 담벼락 일부만 남기고 현재 사라졌다. 할인마트 건물로 바뀌었다. 1900년대 생겨난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리겐’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초량 앞바다가 매립되고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이름만 남기고 옛 영화는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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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길을 오른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적혔다. 초량초교는 나훈아와 이경규, 박칼린이 나온 학교다. 그들은 바다가 보이는 초량에서 살면서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남선창고에서 뛰어놀던 이들이 예능에 남다른 재주를 보인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길 옆에는 1893년 지은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뜻깊은 장소다.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바닷바람도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이바구길에는 제주 올레길처럼 곳곳에 쉼터가 있는데 옛 추억 속 ‘점빵’처럼 멋스럽게 생겼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레드제플린이 노래한 하늘로 오르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었나.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페루 마추픽추에서 본 계단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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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큰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로 길은 좁고 서로 눈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각도다. 소통이란 이렇게 자연스레 이뤄진다.
168계단을 오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가을 바다를 웅장한 항만과 설비.그리고 다닥다닥 서로 이어진 집들의 지붕이 연결된 삶의 진면목이 모두 한눈에 펼쳐질 만큼 전망이 좋다.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를 만난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 거리며 부산의 지붕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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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남의 집 지붕이 주차장이 되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부산의 경치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을 발한다.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은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였다. 일년 후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적는다. 그것도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 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이듯, 산복도로에서 보는 풍경은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보는 ‘근사하기만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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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소년을 떠올려 본다. 어른이 된 그가 이곳을 찾는다면 어떤 감동을 되찾아갈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 이라할 지라도, 자녀와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아빠가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을 듯 하다.
추억은 늘 누군가와 교감하며 키워가는 것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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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재확인하러 떠나는 여행길이라면 부산에서 한 군데를 더 들러봐야 한다. 바로 영도다. 영도는 변검(중국의 가면 연극)처럼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는 부산에서 가장 느린 삶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캉캉처럼 번쩍 들어올리는 영도다리 너머 또다른 부산의 맨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영도 출신 누군가가 내게 들려준 말이 떠오른다. “부산 사람과 영도 사람은 확실히 다르다. 부산 안에서 또다른 부산을 맛보려면 영도를 가야한다”는.
부산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초량이바구길=이바구길에는 지금 의료보험의 형태를 고안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기념관 등 곳곳에 들러볼 곳이 많다. 특히 산복도로를 배경으로 삶의 향기를 모아놓은 현대판 남선창고 격인 ‘이바구 공작소’가 있다. 이바구 공작소 1층에는 각종 근대 사료(史料)와 초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추억을 적어놓은 글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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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길투어=정기투어는 매주 토·일 오후 1~3시. 신청 인원 5명 이상 출발. 수시 투어는 주중 수시로 운영하면 최소 10명 이상 단체 신청 시 운영한다. 사전 예약 후 참가(비용 무료). 부산광역시 관광(tour.busan.go.kr), 부산관광공사(www.bto.or.kr) (051)780-2178.
●버스 투어=부산역에서 매주 토·일요일 하루 3번(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7시) 출발. 비용 1인당 5000원. 예약은 부산마을협동경제플랫폼 홈페이지(www.woorimaeul.or.kr), 부산 산복도로 버스투어(busanmaeul.or.kr) 프로그램 문의(070)7094-5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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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롯데호텔부산은 여자들만의 즐거운 파티를 즐기기에 좋은 특전들로 구성된 ‘여우야 걸프렌즈 패키지’를 오는 12월 31일까지 선보인다.
29만원부터 제공되는 걸프렌즈 패키지에는 디럭스 패밀리 룸 1박과 함께 호텔 뷔페 식당 라세느 조식 3인, 애프터눈 티 세트, 모엣샹동 와인과 케이크, 피자, 샐러드 등이 포함된 룸서비스, 필름 1통을 증정하는 인스탁스 즉석카메라 대여 서비스, 파티용품 대여 서비스 등이 포함됐다.
‘수다(SUDA)’ 패키지 선택시 걸프렌즈 패키지 특전에 조식 1인이 추가되며 4인까지 넉넉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럭스 스위트로 객실 업그레이드해준다. 가격은 34만원부터.(051)810-1100.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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