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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작가이자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4일 경기 양평 리버마켓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평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양평(경기)=황혜정기자]

“작가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너무 잘 봤어요!! 사진 한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쉴 틈 없이 기념 촬영 요청이 들어왔다. 힘들 법도 한데 귀찮은 내색없이 모든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문호리 리버마켓’의 최고 인기 스타 정은혜(32)의 일상이다.

정은혜 작가는 매주 토요일마다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더우나 추우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 원래도 이 구역 인기 스타였지만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영옥의 언니 영희 역으로 출연하며 인기가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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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지난달 22~28일 방송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4·15회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영희 역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남들과 다소 다른 외모, 말투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그로 인해 상처받으며, 때로 버려지기까지 했던 영희의 아픈 과거사는 정 작가의 몸짓과 어눌한 말투를 통해 고스란히 안방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지난 4일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직접 만난 정 작가는 극중 영희와 비슷하면서도 에너지가 훨씬 넘쳤다. 이날 정 작가는 기자에게 문호리 리버마켓을 소개시켜줬다.

그는 이곳의 ‘인싸’(인사이더,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은어)다. 리버마켓 셀러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부여잡고 “바쁜건 다 끝났어?”라고 안부를 묻고,수다를 떨곤 한다. 몇 년간 봐왔던 익숙한 얼굴들은 그에게 큰 힘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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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셀러로부터 미숫가루를 선물받은 정은혜 작가. 사진 | 황혜정기자

이 날 정 작가는 유기농 먹거리 셀러에게 시원한 유기농 미숫가루를 선물받았다. 그가 “공짜로 받을 순 없어!”라며 연신 사양했지만 셀러의 선물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정 작가는 “어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받은 미숫가루를 맛있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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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가 마켓 셀러로부터 반지 두개를 선물받았다. 사진|황혜정기자

이어 그는 주얼리를 파는 마켓을 찾았다. 반갑게 마켓 셀러와 인사를 나눈 그에게 셀러가 반지 두개를 골라보라고 했다. 정 작가는 “정말요?”라고 기뻐하며 빨강 보석이 박힌 반지 하나와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 하나를 골랐다. 반지를 낀 손가락 마디의 굳은 살에서 매일 그림을 그린 정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마켓의 셀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농담을 나누는 정 작가의 일상을 엿보며 다운증후군 환자가 사회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새삼 반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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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가 실시간 화제성 검색어 1위를 달성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황혜정기자

정 작가는 마켓 투어를 마친 뒤 다시 자신의 부스로 돌아왔다. 한 지인이 ‘실시간 화제·검색어 1위’ 달성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연신 감싸쥐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휴대전화 메신저 목록을 뒤져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큰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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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씨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사진|황혜정기자

정 작가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양평 문호리를 방문했다. 이날만 해도 제주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서울 등지에서 남녀노소 수많은 시민들이 그를 찾았다. 미국에서 찾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정 작가의 연기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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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손님들이 돌아간 뒤에야 정 작가는 한숨돌릴 수 있었다. 그는 “피곤하지만 괜찮다”고 미소지었다. 이렇게 또 숨 돌릴 새 없이 주말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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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2013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의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질투가 났다”고 했다. 20대 중반, 처음 붓을 잡기엔 다소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

어머니이자 스승이기도 한 장차현실 작가는 정 작가의 그림체에 대해 “따라할 수 없는 선”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게 한 원동력에 대해 “그림을 그리면서 시선 강박증(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계속 다른 방향으로 보는 강박적 행동)이 없어졌다. 또 내가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여서 좋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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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가 스포츠서울에 자신이 그린 첫 번째 초상화를 보여줬다. 사진|황혜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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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짜리몽땅 연필들. 오른쪽의 꽃다발은 한 팬이 그를 위해 사온 선물이다. 사진|황혜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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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가 안되는 작은 키지만 장터를 자유롭게 누비는 정 작가는 문호리 리버마켓의 마스코트이자 ‘작은 거인’이다. 그는 토요일에만 참석한다. 이곳 셀러들은 하나같이 “정은혜 작가로 인해 전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작가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니얼굴’(서동일 감독)은 정은혜 작가가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오는 2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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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만나요~.” 캐리커쳐 작가이자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4일 경기 양평 리버마켓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평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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