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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김효원기자]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또 올지라도/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를 중얼거리며 나선 길. 인사동에서 반가운 전시를 만났다.
김유현 작가가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최하고 있는 개인전 ‘Empathy’(공감)전이다. 기와집, 오방색, 한복 등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겨있어 발길을 멈춰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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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현 작가는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오랜 시간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원형질을 탐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인의 고유 주거문화인 기와집을 비롯해 정자, 한복, 떡살 등 전통을 모티브로 한 페인팅, 도자기, 설치 등을 대규모로 선보이고 있다. 눈 덮인 기와지붕이나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는 정겨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국어 시간에 이어령의 ‘신시(市)의 아침’을 접한 것이 아키타입 작업의 단초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인의 탄생을 알려주는 단군신화는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와 달리 웅녀는 인내하고 낙관하며 고난을 버텨 사람이 됐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출신의 김 작가는 미 메릴랜드 미술대학(MICA), 코코란 미술대학, 파슨스-파리 미술대학 등에서 미술을 배우고 미국, 프랑스, 한국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한국을 떠나 미국, 프랑스 등으로 주거지를 바꾸며 이방인으로 살았던 경험이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더욱 더 탐구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시선을 끄는 작품은 김 작가가 상상으로 그린 정자 그림이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며 상상으로 그린 정자는 단아한 기와지붕과 세련된 현판 등이 고졸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한국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건축물의 모습이다.
한복을 입은 세 여인을 그린 그림 역시 눈길을 끈다. 화려한 한복의 색과 풍성한 치마의 주름, 살며시 치맛자락을 잡은 손가락 등이 한국의 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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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현 작가는 “코로나19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요즘이지만 한국인은 공감하고 배려하며 고통을 이겨내는 저력이 있기에 반드시 극복할 것을 믿는다”면서 “하늘의 뜻에 공감하고 인내하는 한국인의 아키타입을 앞으로도 꾸준히 작업으로 담아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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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재료로 떡살을 빚어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대작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작업이다.
김 작가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정한수를 떠놓고 빌었던 한국 여인의 마음을 떠올리며 떡살을 빚고 칠했다. 올해는 코로나가 종식돼 우리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일까지 계속된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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