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은 숨 가쁘다. 마리나 베이 샌즈가 쏘아 올린 레이저와 금융가의 마천루들이 미래를 향해 질주할 때, 고요히 시간을 거스르는 백색의 성(城)이 있다. 1887년 문을 연 이후, 단순히 숙박 시설을 넘어 싱가포르 그 자체가 되어버린 곳. 바로 ‘래플스 호텔(Raffles Hotel)’이다.

호텔의 역사는 곧 싱가포르 식민지 시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사키스 형제(Sarkies Brothers)가 10개의 객실을 갖춘 방갈로 스타일로 시작했던 이 호텔은, 이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교적인 장소로 변모했다. 빅토리아 양식의 우아한 콜로네이드(열주)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정원은 당시 유럽 귀족들과 모험가들에게 ‘동양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래플스가 ‘전설’이 된 데에는 문호들의 사랑이 결정적이었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래플스에서 식사를 하라(Feed at Raffles)”라는 말을 남기며 이곳의 미식과 분위기를 찬양했다. 하지만 래플스의 영혼을 가장 잘 포착한 인물은 단연 서머싯 몸이다.

그는 래플스 호텔을 두고 “동양의 신비로운 전설 그 자체(Raffles stands for all the fables of the exotic East)”라고 칭송했다. 그는 이곳의 야자수 아래서 칵테일을 마시며 영감을 얻었고, 실제로 그의 단편 소설들 속에서 래플스는 식민지 시대의 나른함과 욕망이 교차하는 무대로 등장한다. 호텔 측은 이러한 문학적 유산을 기려 그들이 머물던 객실을 ‘작가 스위트(Writer’s Suite)’로 명명해 운영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티크 나무 바닥을 밟으며 투숙객들은 시대를 초월해 대문호와 조우한다.

문학적 향취만큼이나 여행자들을 래플스로 이끄는 강력한 자석은 바로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이다. 1915년, 호텔 내 ‘롱 바(Long Bar)’의 바텐더 니암 통 분(Ngiam Tong Boon)은 당시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기시되던 여성들을 위해 묘안을 냈다. 진을 베이스로 하되, 체리 브랜디와 파인애플 주스를 섞어 마치 과일 주스처럼 보이는 핑크빛 칵테일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 달콤하고도 도발적인 칵테일은 순식간에 동양의 낭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지금도 롱 바 앞에는 이 전설적인 한 잔을 맛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긴 줄을 선다. 이곳의 또 다른 재미는 바닥에 수북이 쌓인 땅콩 껍질이다. 싱가포르에서 유일하게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허용되는 곳, 점잖은 신사가 땅콩 껍질을 바닥에 툭 던지며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은 래플스만이 가진 여유이자 파격이다.

래플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점령당해 ‘쇼난 료칸(Syonan Ryokan)’으로 이름이 바뀌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본연의 이름을 되찾았으며, 1987년에는 싱가포르 정부에 의해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차례의 리노베이션을 거쳤지만, 래플스는 여전히 19세기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도어맨인 시크(Sikh) 경비원이 터번을 두르고 여행자를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140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현대적인 럭셔리 호텔은 막대한 자본으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러디어드 키플링이 묵고, 서머싯 몸이 글을 쓰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잠들었던 역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싱가포르에 가면, 설령 투숙하지 않더라도 래플스에 들러 슬링 한 잔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 붉은 칵테일 속에는 ‘동양의 진주’가 지나온 격동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socool@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연재기획: 원성윤의 호텔의 역사]

①모네의 캔버스, 처칠의 아지트…‘사보이’는 어떻게 전설이 됐나

②110년의 증인, 환구단 맞은편 ‘최초의 럭셔리’ 조선호텔

③샤넬이 30년간 ‘집’이라 부른 곳…리츠 파리, 럭셔리의 역사를 쓰다

④아차산 자락에 핀 ‘동양의 라스베이거스’, 워커힐의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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