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부산=서지현 기자]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을 만나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났다.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판 ‘부고니아’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부고니아’가 상영됐다. ‘부고니아’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설을 믿는 두 청년이 대기업 CEO 미셸(엠마 스톤 분)이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작품은 미셸의 회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테디(제시 플레먼스 분)가 함께 사는 사촌 동생 돈(에이든 델비스 분)에게 미셸이 지구를 침범한 외계인임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후 테디 형제는 미셸을 납치하고, 그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그러나 미셸은 이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하다. 과연 테디 형제는 ‘타칭 외계인’ 미셸로부터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부고니아’는 원작 ‘지구를 지켜라’의 궤를 따라간다. 테디 형제가 미셸을 외계인으로 몰아가는 장면부터 납치극, 고문하는 과정이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차별점은 원작에서 배우 백윤식이 연기했던 강만식 사장이 성별 반전으로 여성 CEO 미셸이 됐다는 점이다.

성별 반전이 이뤄지며 원작 속 고수위 고문 장면들은 미셸과 테디 형제가 주고받는 대화로 채워졌다. 시각적인 고통은 줄어들었으나 밀도 높은 대화들로 채워지며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또한 ‘지구를 지켜라’가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채워졌다면, ‘부고니아’는 일개 노동자이자 소시민인 테디 형제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 집중했다. 원작 속 블랙 코미디 요소에서 ‘코미디’보단 ‘블랙’에 집중한 셈이다.

여기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음악이 더해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대기업 CEO를 외계인으로 오해하는 테디 형제의 기발한 상상력과 사회현상을 교차로 보여주며 실제로 해당 이야기가 ‘뜬구름’이 아닌 현실에 발을 붙인 이야기임을 일깨워준다. 여기에 테디의 과거가 등장할 때마다 쏟아지는 음악은 현재 시점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원작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요르고스 감독만의 색채를 더했다. 당초 ‘부고니아’는 원작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불발됐다. 다만 드라마 ‘석세션’ 영화 ‘더 메뉴’ 각본을 맡았던 윌 트레이시와 함께 작업했다. 여기에 지난 2018년부터 국내 배급사 CJ ENM이 ‘부고니아’ 영어 리메이크 시나리오부터 감독, 배우, 제작사 패키징 등 기획개발을 주도했다.

개발 단계부터 7년이 흘렀다.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키겠다고 나선 원작 속 남매에서 사촌 형제가 됐고, 납치된 피해자는 남사장에서 여성 CEO가 됐다. 그럼에도 작품이 가진 아이러니함은 여전하다. 회색과 진회색처럼 같은 색에 조금 다른 톤일 뿐이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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