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관마 캘리포니아 크롬이 질풍처럼 내달리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팬들을 열광케하는 수많은 ‘더비’가 펼쳐진다. 가깝게는 지난 5일 어린이날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잠실 더비’가 열렸다. 매년 어린이날에 맞붙는 ‘한지붕 두가족’ LG와 두산의 라이벌전은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더비’다. ‘더비’는 가까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일컫는 말로 우리에겐 축구의 ‘맨체스터 더비’, ‘엘클라시코’ 등으로도 익숙하다.

그런데 사실 ‘더비’의 원조는 경마다. ‘더비’ 뿐만이 아니다. 경마는 기원전까지 거슬러오르는 오랜 역사 때문에 지금까지도 각종 스포츠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경마에서 비롯된 스포츠 용어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1821년 ‘앱섬더비’의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화폭에 담았다.  제공 | 한국마사회

경마의 ‘더비’는 1789년 영국의 더비 백작이 3세마들을 모아 대결시키는 경주를 기획한 것이 시초다. 앱섭다운스 경마장에서 첫 더비경주가 개최된 이후 오늘날까지 ‘앱섬더비’가 이어지고 있다. 연령제한이 있기에 경주마에게는 딱 한 번밖에 우승의 기회가 없어 경마팬들의 인기를 모으며 최고의 경주로 부상했다. 이 ‘앱섬 더비’는 1, 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멈추지 않았을 만큼 영국인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전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역시 “영국 수상보다는 앱섬더비 경주 우승마의 마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앱섬더비’를 본떠 미국의 ‘켄터키 더비’, 일본의 ‘재팬 더비’, 홍콩의 ‘홍콩 더비’ 등 100여개 국에서 자체적인 ‘더비’로 발전시켰다.

경마를 스포츠 상품으로 발전시킨 미국은 ‘켄터키더비’와 관련해 ‘트리플크라운’이라는 용어도 만들어냈다. 한 경주마가 ‘켄터키 더비’와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등 세 경주를 모두 우승하면 ‘트리플크라운’의 영광을 안게 된다. 1930년 미국의 경주마인 ‘갤런트 폭스’가 이 세 경주에서 모두 우승한 후 그의 자마 ‘오마하’가 또다시 1935년 세 경주를 싹쓸이하자 한 스포츠기자가 이를 ‘트리플크라운’이라고 표현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 해에 주요 대회를 모두 우승해야하기에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진기록으로 꼽힌다.

‘트리플크라운’은 경마에서 유래된 말 중에 가장 폭넓게 쓰이는 용어 중 하나다. 스포츠계 뿐 아니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연기로 오스카, 에미, 토니상을 휩쓸거나 기업들이 실적을 발표할 때 매출,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모두 최대치를 기록하면 ‘트리플크라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 경마에서 ‘트리플크라운’은 우수한 경주마를 선발해 씨수말로 환류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2015년 37년 만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아메리칸파로아’ 역시 같은 해 현역에서 은퇴해 높은 교배료를 받으며 씨수말로 전환해 후대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마사회 역시 우수 국산마의 선발과 환류를 위해 ‘코리안 더비’를 비롯한 ‘트리플크라운’ 시리즈 경주를 시행하고 있다.

대회 내내 1위를 달리며 우승을 했을 때 ‘와이어투와이어’(wire-to-wire)우승이는 표현을 쓴다. 특히 골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 골프 경기의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우승하는 것을 뜻한다. 경마 경주에서도 출발선부터 결승선까지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와이어투와이어’라고 부른다.

‘와이어투와이어’의 유래는 1700년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마 경기에서 우승자를 판별하기 위해 출발선과 결승선에 철사(wire)를 설치했다. 1등으로 달린 말이 가장 먼저 이 철사를 끊게 되기 때문에 ‘출발선의 철사에서부터 결승선의 철사까지’(wire to wire) 1등을 지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마에서는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1월 한국마사회 소속 경주마 ‘닉스고’가 내로라하는 전세계 경주마들이 모인 미국 ‘페가수스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하기도 했다.

상대선수의 실격 또는 부상으로 인한 기권승을 ‘워크오버’라고 부른다. W/O라는 표기로 더 익숙하다. 부상으로 인한 기권이 잦은 테니스에서는 매우 흔하게 쓰이며 축구나 농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역시 경마에서 비롯됐다. 경마에서는 단 한 마리만이 남더라도 경주 코스를 완주해야 한다. 끝까지 경주로를 걸어야하기에 이 규정을 ‘워크오버’라고 부른다.

18세기의 전설적인 경주마 ‘이클립스’는 그 압도적인 실력으로 무려 8차례나 워크오버를 기록했다. 상대 경주마들이 패배를 직감하고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미국 경마에서는 35번의 워크오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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