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 오승환.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끝판왕’ 오승환(37·콜로라도)은 질문왕이다.

일본프로야구 한신에 입단한 2014년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콜로라도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도 틈만 나면 동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다. 오승환은 “다른 환경, 다른 문화에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선수들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질문왕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미국이 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는데, 특히 미국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밝혔다. 타고투저 시대에 살고 있는 KBO리그 투수들이 한 번은 귀 기울여 볼 만 한 얘기다.

질문 내용도 다양하다. 타석이나 마운드에 서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부터 경기 사이 사이 루틴까지 광범위하다. 아무래도 투수이다보니 타자 상대 요령이나 구종별 그립 등 기술적인 질문도 한다. 프라이버시도 있고 선수 각자 자존심도 있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모르는 것은 일단 물어보는 편이다. 오승환은 “보고 아는 경우도 있지만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질문한다기보다 야구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해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본 ‘미국 야구’는 야구 자체를 정말로 즐기고 있다는 게 한국 일본과 가장 큰 차이다. 단편적인 예를 하나 들어 달라고 하자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제구에 관해 실패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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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한(왼쪽)이 모교 도신초등학교 후배를 지도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오승환은 “콜로라도 마무리 투수인 웨이드 데이비스와 커브에 관한 얘기를 했을 때다. 데이비스는 ‘커브를 원바운드로 던지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는 얘기를 하더라. 원바운드도 던져보고 , 포수 머리 위로 넘겨도봐야 커브를 던지는 목적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과 너무 달라 놀란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아마추어 때부터 사실상 모든 공을 포수 미트에 넣기를 강요 받는다. 커브를 던지는 목적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서다. 낙차가 클수록 효과가 큰데, 그립과 떨어지는 각, 속도 등에 따라 때로는 원바운드로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떨어지는 공은 포심 패스트볼과 비교하면 높은 곳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슬로 커브를 설명할 때 ‘공이 갑자기 하늘로 솟았다가 스르륵 가라 앉으면서 날아오는 느낌’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떠오르면 일단 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평범한 배팅볼이 되거나 소비되는 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타자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포심 패스트볼과 비슷한 높이로 시작하는 커브를 던지면 십중팔구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지면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속이 빠른 편이라면, 헛스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폭투 위험성도 있지만, 타자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려면 모험이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던지는 목적에 부합하는 제구를 스스로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 겪는 수 많은 시행착오가 이른바 ‘상황에 맞는 투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물론 언제든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으로 갖춘 이후의 얘기다.

모든 공이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간다면 투수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이 명확한 타자들은 원바운드 되는 공에 헛스윙을 하면서도 3할을 친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타자의 배트를 끌어낼 수 있는 투수가 진짜 에이스다. 실패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는 것, KBO리그 투수들이 스스로 찾아야 할 생존법이다.

한편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도 ‘질문왕’ 행보를 이어간 오승환은 27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에 위치한 솔트 리버 필즈 앳 토킹스틱에서 치른 클리블랜드와 시범경기에 등판해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최고구속은 145㎞까지 측정됐고 내야 플라이볼 3개를 유도해 변치않은 볼 회전을 과시했다. 투구수는 13개에 불과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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