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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절경 용추협곡, 옛 선비들은 이곳을 신선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여겼다.

[청송 | 글·사진 스포츠서울 황철훈기자] 푸른 소나무를 의미하는 경북 청송(靑松)은 대한민국 대표 오지였다.

이젠 그것도 옛날 얘기로 들으면 된다. 지난해 12월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국제슬로시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그리고 지난달 28일 대명리조트 청송 개관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단숨에 대한민국 문화관광의 중심지를 노리고 있다.

특히 올 5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는 2010년 제주도에 이어 국내에선 두번째, 내륙에선 첫 번째로 이뤄낸 쾌거라 더욱 의미있다.

◇원시 비경을 담은 지질박물관 ‘주왕산’

이른 새벽 서둘러 채비를 하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과연 빨라졌다. 서울요금소~청송나들목까지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이상 BYC(봉화·영양·청송)로 불리던 오지가 아니다. 청송나들목을 빠져나와 주왕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가엔 어린이 주먹만 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30여분을 달리는 동안 주위가 온통 사과밭이다. 청송의 기후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커 사과 농사의 적지라 청송 사과를 꿀사과로 부르는 이유다.

중국에서 반란에 실패한 당나라 주왕이 숨어들었대서 이름 붙여진 주왕산은 기암절벽이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보인다해서 옛날엔 석병산이라 불렀다. 높이는 해발 721m로 높진 않지만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수정처럼 맑은 폭포수를 담은 계곡은 빼어난 절경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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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의 입구에 위치한 천녀고찰 ‘대전사’

주왕산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들머리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딴 천년고찰 대전사가 있다. 경내로 발걸음을 옮기니 보광전 뒤로 주왕산의 상징인 거대한 기암(旗巖)이 눈에 들어온다. 기암(奇巖)이 아니다. 주왕과 신라 마장군의 전투 때 주왕의 군사가 깃발을 꽂았다고 해 기암(旗巖)이다. 하늘로 우뚝 솟은 모양새가 마치 손가락을 모아놓은 듯하다.

주왕산은 화산 폭발로 생겨난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뜨거운 응회암이 급속히 냉각되면서 수축작용으로 세로로 틈이 생기고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기암절벽을 만들었다. 화강암 바위산과 달리 바위가 물러 암벽등반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덕에 오랜 세월을 견디며 멋진 절경이 보존됐다.

대전사를 지나면 탐방로가 시작된다. 길은 평탄하고 나무 그늘이 있어 무더운 여름에도 그리 힘들지 않다. 평탄한 길을 사부작 걷다보면 곳곳에 기암괴석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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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아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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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급수대

길가 오른편에 집채만 한 바위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와 계곡 한가운데 턱 하니 버티고 있다.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다. 바위엔 작은 돌들이 이미 수북하다. 그들은 아들을 낳았을까.

이어 상어머리를 닮은 ‘급수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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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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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교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상대등 김경신이 내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주왕산으로 몸을 피했다. 김주원은 바위 위에 대궐을 지었다. 산위에는 물이 없어 바위 위에서 계곡의 물을 퍼올렸다. 그 바위가 급수대다. 이를 지나면 아치형 아름다운 돌다리를 만난다. 학소교다. 학소교에서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석상이 섰다. 떡을 찌는 시루를 닮은 시루봉이다. 다리를 건너면 속세를 벗어난 천상으로의 초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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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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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협곡 선녀탕

◇속세와 천상의 경계, 용추협곡

깎아지른 수직 단애가 수문장인양 좌우로 늘어섰다. 좁아진 바위 협곡을 돌아 들어가니 이내 넓어지며 파란 하늘과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선경(仙境)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은 굽이굽이 3단으로 흘러 바위아래 선녀탕과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를 만든다. 아마도 무릉도원이 실재하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게다.

용추폭포는 주왕산의 절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등반길이 편안해 가족여행에 제격이다. 용추폭포를 지나 절구모양의 바위에 물이 담겨져 다시 쏟아지는 절구폭포.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용연폭포를 보고 후리메기~칼등고개~주봉을 지나 대전사로 되돌아 오는 코스(8.9㎞, 4시간20분 소요)는 초보자에게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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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계곡의 대표 절경인 ‘만안 자암 단애’

◇청송 제1경 신성계곡

주왕산을 제치고 청송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신성계곡이다. 안덕면 절벽 위 정자 방호정에서 길안천을 따라 백석탄 계곡까지 이어지는 약 15㎞ 계곡이다.

방호정은 조선중기 학자 조준도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세운 정자로 신성계곡 절벽 위에 아스라이 자리 잡았다. 방호정 아래에 흐르는 맑은 길안천 일대는 여름철 가족단위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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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학자 조준도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세운 정자 ‘방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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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위 절벽인 만안 자암 단애를 끼고 흐르는 길안천일대는 청정지역으로 매년 다슬기 축제가 열린다.

방호정에서 길안천을 따라 만안삼거리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깎아지른 적벽이 나타난다. 신성계곡의 대표 절경인 붉은 바위 절벽 ‘만안 자암 단애’다. 붉은 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때 땅속의 퇴적암이 융기하면서 지표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면서 절리로 쪼개져 지금의 모습이 됐다.

만안삼거리에서 새마을교 아래도 돌아 내려가니 다리 아래 주민들의 야유회가 한창이다. 다리 앞 냇가에선 동네 청년 2명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청정한 길안천 일대는 청송의 대표 여름 피서지다. 특히 매년 7월이 되면 ‘만안 자암 단애’ 일대 길안천에선 다슬기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모인 피서객들도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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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질공원 청송의 대표명소 ‘백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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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돌이 반짝거린다는 뜻의 백석탄

백석탄은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내(川)를 뜻한다. 빼곡한 기기묘묘 백석(白石)이 마치 설산(雪山)의 미니어처 같다. 거대한 천상 조각공원을 이룬 백석탄은 돌절구처럼 움푹 패인 크고 작은 돌개구멍과 영겁의 세월이 만든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로 장관이다. 돌개구멍(Pot Hole)은 오목한 퇴적암 부분 위로 물이 흐르다 떠밀려온 작은 돌과 모래과 함께 소용돌이 치면서 구멍을 넓혀가며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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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의 비경을 자랑하는 주왕산 ‘절골계곡’

◇태곳적 신비를 품은 절골계곡

옛날에 절이 있었다 해서 절골계곡으로 불린다. 주방계곡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탓에 호젓한 여름휴가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으로 주방계곡을 넘어서는 의외의 비경이다. 절골 탐방안내소에서 대문다리까지 약 5㎞ 구간은 완만한 계곡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다만 중간 중간 계곡을 건너야 해서 등산화보다는 아쿠아 슈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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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절골 탐방안내소에서 10여분 걸어 들어가면 깎아지른 수직 절벽과 죽순처럼 솟은 바위가 만든 협곡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짙푸른 녹음과 끝없이 펼쳐진 수직절벽은 도원경(桃源境)을 펼쳐놓았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비경에 홀려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걷게 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변하는 비경은 신비롭기 그지없고 온몸을 휘감는 시원한 골바람이 근심마저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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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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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굽어진 협곡을 돌아들면 원시의 비경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불쑥 공룡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생김새다. 아마도 7000만년 전엔 현실이였을게다. 주왕산도 한반도에 공룡이 우글거리던 중생대 백악기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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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영덕 옥계계곡

◇신비스런 풍경과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영덕 옥계계곡

청송 얼음골을 지나 차를 타고 영덕 방향으로 5분만 가면 놀라운 풍경에 걸음을 멈추는 곳이 있다. 바로 옥계계곡이다. ‘옥계(玉溪)’, 이름 그대로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자연이 조각한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져 ‘선경옥계(仙境玉溪)’를 펼쳐놓았다.

이곳은 계곡의 폭이 넓어 야영하기가 좋아 캠핑족들에게 인기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각지에서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또한 물이 얕고 유속이 빠르지 않아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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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너럭바위위에 자리한 ‘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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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정은 조선 광해군 원년(1609년)에 손성을이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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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정(枕漱亭) 아래엔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 천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옥계계곡에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정자 ‘침수정(枕漱亭)’이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침수정은 조선 광해군 원년(1609년)에 손성을이 지은 정자로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뜻을 가졌다.

침수정 아래엔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 크고 작은 천연 수영장이 생겨났다. 앞은 우뚝 쏫은 향로봉과 촛대봉이 자리하고 오른편은 켜켜히 쌓인 병풍석이 둘러섰다. 풍광이 신비스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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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덕원마을의 송소고택과 송정고택

◇전통의 멋과 향기가 있는 ‘힐링 고택’ 송소·송정고택

청송 덕원마을엔 99칸 대저택 송소고택이 있다. 조선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이 지은 ‘ㅁ’자 형의 전통 양반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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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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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의 솟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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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에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헛담’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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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의 사랑방에서 바라본 풍경

위풍당당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큰사랑채를 마주하게 된다. 앞마당에는 소담스러운 정원을 꾸몄고, 오른편엔 ‘헛담’이 있다. 헛담은 큰사랑채에서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쌓은 담으로 내외법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여인들은 헛담에 몸을 숨기고 솟을대문을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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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과 나란히 붙어있는 송정고택

송소고택과 나란히 붙어있는 송정고택은 송소고택을 지은 심호택이 둘째아들 송정(松庭) 심상광의 살림집으로 지어준 집이다. 송소고택에 비해 작고 소박하지만 대지는 오히려 더 넓다. 솟을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높은 팔작지붕의 사랑채와 안대문채가 있다. 다시 안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아늑한 중정과 돌로 쌓은 기단위에 소박한 맞배지붕과 시원한 대청마루가 있는 안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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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고택 관리인 심증옥씨

마침 안마당에서 마주한 관리인 심증옥씨(송정 선생의 손녀)는 고택에 관심을 보인 길손에게 기꺼이 차와 청송사과를 내어놓으며 고택의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름 휴가, 특별한 하룻밤(?)을 원한다면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고택이 제격이다.

사랑방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대청마루에 목침을 베고 누워도 좋다.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책을 읽어도 좋다. 사랑채에 들어 문을 열면 산과 들, 꽃과 나비가 모두 다 제것이다.

colo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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