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준
석현준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기기자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됐다. 그래도 두 번째 A매치 향해 나아가겠다.”

최근 한국 축구는 스트라이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과 일본 2부리그에서 뛰는 이정협과 이용재를 11일 UAE전과 16일 미얀마전 앞두고 발탁한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공격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축구팬들은 ‘잊혀진 스트라이커’ 석현준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해 여름 그는 연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잘려나가는 것을 감수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포르투갈로 다시 건너갔다. 그는 낯선 땅에서 외롭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중이다. 1부 중위권 구단 나시오날과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각각 6개월씩 뛴 그는 2014~2015시즌 10골을 기록하며 2010년 아약스(네덜란드)를 통해 프로 무대에 입문한 뒤 처음으로 단일 시즌 두 자리 수 득점에 성공했다.

한 시즌을 건강하게 마치고 1년 만에 한국에 온 그를 지난 1일 만나 인터뷰했다. 큰 키에 구릿빛 피부, 양 팔을 휘감은 문신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공격수 냄새를 물씬 풍겼지만, 밝은 미소 속에서 겸손하게 1년간의 포르투갈 생활을 정리하는 그의 태도에선 낮은 곳에서 새 도약을 준비하는 모습을 느끼게 했다. 석현준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대한민국을 위해 공헌하고 싶다”며 태극마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어 “아직은 유럽에서 더 도전해보고 싶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며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은 1년 만에 찾았다.
그렇다. 작년 여름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친구들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는 한국에서의 시간은 행복하다. 하지만 한국은 4계절 아닌가. 계절마다 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 특히 겨울에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오지 못하니까….

-올시즌 포르투갈에서 10골을 넣었는데.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좋게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더 넣고 싶었다. 더 넣을 수도 있었는데 운이 부족했던 것도 있고. 모든 걸 잘 하고도 마무리가 안 되어 아쉬운 면은 있다. 지금 소속팀 비토리아 세투발에 적응도 했으니 다음 시즌엔 더 잘하고 싶다.

-부상을 항상 달고 살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비토리아에서 주전으로 처음 뛸 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 2경기는 내게 처음이었다. 1년간 부상 안 당하고 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조절하는 지도 몰랐고, 몸도 지쳐서 중간에 1~2주 쉬었다. (2013년 전반기에 뛰었던 포르투갈 1부)마리티무에선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앞으로 천천히 뛰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팀에선 뛰기를 원해서 진통제를 맞기도 했다. (2013~2014시즌에 뛴)사우디 알 아흘리에선에선 다른 부상들도 많았다. 올시즌엔 나시오날 갔을 때 약간 다친 것 말고는 큰 부상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갔다가 다시 포르투갈로, 그 것도 나시오날 입단을 위해 대서양 외딴 섬 마데이라를 다시 가서 의외였다.
마데이라 섬에 있던 마리티무에서 뛸 때 정말 좋은 클럽 오퍼를 받았다. 마리티무 구단주와도 얘기를 했는데, 그가 직접 날 불러 “벤피카가 200만 유로, 스포르팅이 100만 유로를 제시했지만 난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FC포르투를 2연패로 이끈 감독(비토르 페레이라)이 알 아흘리로 가면서 날 원한다고 불렀다. 사우디 얘기를 듣고 나서 유럽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가고 싶지 않았는데, 구단주는 자꾸 사우디로 가라고 했고. 알 아흘리가 이적료로 300만 유로를 불렀다. 마리티무 입장에선 날 6개월 쓰고 300만 유로를 거의 고스란히 챙기니 횡재한 거다. 마리티무에서 내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페레이라 감독이 전화를 했다. “1년 있다가 난 빅 클럽 갈 거다. 지금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타이틀을 위해 사우디에 온 것이다”며 “ACL 우승하면 같이 좋은 팀에 가자. 하나님께 맹세한다”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페레이라 감독을 두고 능력 있고 좋은 지도자라고 해서 따라 갔는데 2경기 만에 다쳤고, 포르투갈에 가서 수술을 했다. 왼쪽 발등 뼈 골절상인데 아직도 대못 만한 핀이 박혀 있다. 사우디에서 시간을 보내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돈은 머리 속에서 지우고 다시 뛰기 위해 작년 여름 마데이라 연고 다른 팀인 나시오날로 왔다.

-6개월 뒤인 올 초 다시 포르투갈 본토 세투발로 이적했는데.
나시오날에선 내게 잘해줬다. 그런데 내 자신이 준비가 안 됐다, 사우디 있다가 포르투갈 다시 가니까 거기서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마리티무에서 뛸 때 생각만 하고 자만 아닌 자만을 했다. ‘잘 되겠지’란 생각으로 갔는데 부딪혀보니 쉽지가 않더라. 힘든 시간도 있었다. 자신감이 떨어졌을 그 때, 비토리아 감독이 내게 왔다. 난 경기를 많이 뛰고 싶었고, 또 뛰어야 했고, 거기 감독님은 “무조건 주전으로 넣겠다”고 해서 이적했다. 처음 갔을 때부터 비토리아가 좋았다. 세투발이란 도시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동료들도 잘 해줬다. 나시오날에선 브라질 선수들이 특히 많아 영어가 안 동했다. 비토리아에선 3~4명 말고 다들 영어를 했다.

-골 영상을 보면 공중볼은 물론, 발로도 곧잘 골을 넣었는데.
개인 연습을 고교 땐 많이 했는데 프로 오면서 잊었다. 나시오날 간 뒤 힘든 시기여서 하루도 안 빠지고 개인 훈련을 했다. 팀 훈련이 오후에 있으면 오전에 나 혼자 볼 갖고 드리블도 하고 발 기술을 익혔다. 나시오날에선 그 효과가 안 나왔는데 비토리아로 간 다음 그게 나오더라(웃음).

-포르투갈 생활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네덜란드와 비교한다면.
많이 외로웠다. 나시오날 땐 마데이라 섬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갇혀 있는 느낌을 줬다. 한국인이나 한국 식당도 없고, 그래서 네덜란드가 많이 그리웠다. 그 안에서 별다르게 할 것도 없다. 힘들 땐 신앙에 많이 기댔다.

-올시즌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대표팀 발탁 여론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한국 반응을 많이 보내줬다. 볼 땐 기분도 좋고, ‘사람들이 날 이렇게 다 좋아해주시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다. 아약스(2010~2011년)에서 뛸 땐 날 좋아하셨지만 이후엔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런 격려와 기사들로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 이번엔 비록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지만, 꼭 지금은 아니어도 우리나라를 위해 공헌할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오면 잘 하든 못 하든 최선을 다해서 뛰고 싶다.

-첫 A매치(2010년 9월7일 이란전)에 나선 지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사실 지난 해 이광종 감독님이 계셨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연락이 왔었다. 작년 3월 친선 경기를 할 계획인데 불러주시겠다는 거였다. 결국 취소됐지만 되돌아보면 아쉽다. 대표팀은 언제든지 가고 싶은데,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보는 것보다 남들이 보는 게 확실히 맞으니까. 대표팀에 언젠가 간다면 축구적으론 페널티지역 안에선 자신 있게 할 것 같다. 예전엔 수비수들이 내 볼을 빼앗을까 두려워했다. 요즘은 마음이 바뀐 게 16m란 공간 안에선 내 세상이다. 수비수가 내 다리만 살짝 걸어도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고. 오히려 수비가 날 두려워해야 한다. 그 전엔 반대 생각을 한 것 같다.

-포르투갈 리그는 어떤가. 벤피카,포르투, 스포르팅 리스본 말고는 약하다는 말도 있는데.
뭐,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스포르팅 브라가까지 4팀은 구단도 튼튼하고 실력도 있다. 그러나 다른 팀들 또한 좋다. 포르투나 스포르팅하고 할 때 우리가 쉽게 지지는 않는다. 물론 올시즌 최종전에선 브라가에 0-5로 졌지만 포르투도 우릴 힘들게 이겼고, 스포르팅도 비토리아에 고전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하늘과 땅’ 차이는 아니다.

-참고하는 공격수가 있다면.
동영상을 엄청 많이 본다. 좋아하는 선수는 팬들이 아는 것처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인데, 요즘은 카를로스 테베스나 곤살로 이과인의 플레이를 즐겨 본다. 즐라탄은 최근 보니 많이 내려와서 볼을 받고, 거기서 올라가 자기 플레이를 한다. 이과인이나 테베스는 골문 안에서 골을 넣고 드리블도 한다. 킬러에 좀 더 가깝다. 포르투에서 뛰는 작손 마르티네스도 참고한다.

-이승우가 광고판 걷어찬 것으로 화제가 됐는데 공격수로서 스트레스 해소법은 있나.
난 (이승우처럼)광고판 찬 적은 없지만 다르게 푼다. 상대 수비수들에게 푸는 것 같다. 90분 내내 수비수에게 시비도 걸고 열 받게도 하고, 싸움도 붙인다. 그러다 보면 수비수들이 흔들리기도 하고, 내겐 여유가 생긴다. 물론 시즌 끝나기 직전엔 그들이 날 다치게 할 수도 있어 자제한다(웃음).

-저니맨 생활은 할 만한가. 포르투갈 리그가 그렇게 형편이 좋지는 않은데.
맞다. 돈 문제도 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 팀에 적응도 잘 하고 있고. 기회가 되어 좋은 팀을 가면 좋지만 이 팀에 거의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솔직한 마음으론 6개월에서 1년 더 있고 싶다. 더 좋은 시즌을 보낸 다음에 좋은 팀도 가고 싶다.


-K리그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돈 때문에 아시아로 오려고 했다면 더 빨리 왔을 거다. 얼마 전에도 중국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유럽에서 내 꿈에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이적시장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더 해보겠다. 그러다 안 되면 군대 문제도 있고 하니까 한국에 올 것 같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악플이 꽤 붙었다.
그렇게 보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린 애가 건방지고 그랬으니까. 내 탓이다. 이번 시즌에 다들 좋은 평가를 주셨지만 아직은 잘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석현준에게 축구란 무엇인가.
어쩔 때는 날 외롭게도 했다가 어쩔 때는 행복하게도 하는 존재다. 내가 골을 넣으면 기뻐서 이틀을 못 잔다. 그 정도다. 하지만 어쩔 땐 너무 큰 실망을 준다. 어릴 땐 몰랐는데 이젠 축구가 전부다. 아약스에서 있을 땐 내 생각 자체가 축구보다도 멋 부리고 싶은 것,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 이런 것으로 가득 찼다. 돈도 벌고 싶었고 남들이 타는 차도 타고 싶었다. 그런데 축구가 안 되면 아무 것도 아니더라.

-자신의 플레이가 중계방송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아쉬운 게 있다. 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그 동안 내가 못한 경기도 있지만 골 넣을 것을 떠나 잘한 경기도 있다. 석현준이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 중계방송이 되는 빅리그 이적을 노리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관심이 덜 해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우디에서 포르투갈 갈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나시오날 이적을 협상한 에이전트도 “미쳤냐고. 연봉이 10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드는데 왜 포르투갈로 오는가”라고 하더라. 뭐, 내가 하고 싶은 게 축구다. 그래서 유럽에 다시 왔다. 후회는 없다.

-선수로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고 싶다. 내 목표고 꿈이다. 친구들에게 장난 식으로 얘기하는데 챔피언스리그 음악을 들으면서 선발 출전할 때 카메라가 날 비추면, 정대세 선수가 월드컵 때 운 것처럼 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챔피언스리그는 아무나 뛰는 무대가 아니니까.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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