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다. 역대 박스오피스 역시 애니메이션이 대다수다. 달리 말하면 실사 영화로서는 장벽을 뚫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 ‘벽’을 넘은 이가 있다. 재일 한국인 신분으로 일본 전통 예능 장르인 ‘가부키’ 소재를 앞세웠다. 누군가에겐 무모한 도전으로 취급됐지만, 23년 만에 일본 현지에서 실사 영화로 천만 기록을 세웠다. 그게 이상일 감독의 작품 ‘국보’다.

‘국보’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가부키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두 남자의 일생을 담은 작품이다. 지난 10일 기준 현지에서 누적 관객수 1207만5396명을 기록했다. 누적 흥행 수익만 170억4016만5400엔(약 1601억 원)을 돌파했다. 역대 박스오피스 2위 기록이다. 남은 건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2’(173억 엔)뿐이다.

‘국보’의 성적표는 일본에서 가부키가 얼마나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락이다. 다만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만큼 동시에 폐쇄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상일 감독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국보’의 현지 배급사 도호와 함께 고군분투했다.

“일본엔 3대 영화사가 있어요. 그 중 ‘쇼치쿠’는 영화와 함께 연극, 가부키 업계를 꽉 잡고 있죠. 그래서 협력하는 데 어려웠어요. ‘쇼치쿠’는 가부키 배우들을 귀중하게 생각해요. 혹시나 가부키 업계가 이상하게 표현되면 배우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걸 우려했죠.”

그러나 기우였다. ‘국보’는 일본 현지를 강타했다. 가부키 무대와 배우들의 피땀눈물을 적절히 녹여냈다. 이상일 감독은 “반응이 좋더라. 가부키 배우들도 좋은 소감을 많이 말해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잘 만든 예술은 그 어떤 허들도 넘어설 수 있다. 이상일 감독은 ‘국보’를 통해 한 편의 예술 작품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본인 역시 ‘국보’에 대해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동시에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인간의 민낯도 담았다. 아름다운 무대 위 가부키와 무대 밖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은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교차한다. 그것이 ‘국보’만의 매력이다.

이상일 감독은 “기본적으로 영화의 형태지만 가부키 무대는 하나의 오페라를 보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장대한 서사시를 보는 것 같이. 다만 무대와 일상신이 헷갈리게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배우들이 가부키에 인생을 바치고, 빛을 받지 않냐. 근데 빛을 받을수록 더 많은 그림자가 생긴다. 그 깊은 그림자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국보’의 인기에 힘입어 현지 가부키 문화 역시 재부흥을 맞이했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도 침체기가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갈 수 없었고, 젊은 세대들은 가부키를 보러 가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며 “근데 이 영화로 유입이 생겼다고 하더라. 지금은 가부키 극장을 찾는 사람도 많고, 활기도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제 ‘국보’는 현지를 넘어 한국에서도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공교롭게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 극장가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세다. 또 한 번 애니와 맞붙어야 한다. 이상일 감독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본에선 현재까지 애니메이션이 강했죠. 천만 관객을 넘은 작품도 많아요. 실사는 좀 어려운 상황이었죠. 근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뚫고 나간다면 그건 작품의 힘이죠. 그런 작품을 관객들이 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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