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윤소윤 인턴기자] '여왕이 탄생했습니다' 9년 전 겨울, 캐나다 벤쿠버에 울렸던 기적 같은 한마디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첫 번째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선물했다. 이후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빛나는 은메달을 대한민국에 선사하며 아름답게 빙판을 떠났다.


김연아가 떠난 한국 피겨의 빈 자리는 컸다. 하지만 더 이상의 봄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대한민국에 또 한 번 기적을 꿈꾸게 하는 '김연아 키즈'들이 등장했다. 남자 싱글 차준환(18·휘문고), 여자 싱글 임은수(17·한강중)가 그 주인공이다.


◇ 떡잎부터 다르다. 주니어 시즌


차준환과 임은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남다른 기량을 선보였다. 차준환은 올해로 시니어 데뷔 2년 차를 맞았다. 그는 201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와 7차 대회에서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같은 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3위에 올라 시상대에 태극기를 걸었다.


차준환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시즌부터 였다. 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처음으로 쿼드러플(4회전)점프를 성공했으며 당시 총점 239.47점, 주니어 남자 싱글로는 역대 최고점을 기록하며 정상에 올랐다. 피겨선수로 데뷔하기 이전 아역배우로 활동한 덕에 또래 선수들보다 뛰어난 표현력으로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SBS 방상아 해설위원은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차준환 선수 이전에 다른 선수들도 쿼드 점프를 많이 뛰긴 했지만 큰 경기에서 정확히 보여준 선수는 차준환이 처음이다"라며 "차준환의 가장 큰 장점은 표현력이다. 카멜레온 같은 매력이 있는 선수다. 연기력과 표현력 모두 출중하며 음악을 느끼는 능력이나 스핀, 유연성 모두 정상급이다"고 평가했다.


임은수 역시 남다른 주니어 시절을 보내고 올해 화려하게 시니어 데뷔에 성공했다. 그는 2016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다음 해 2017년 ISU 세계 주니어 피겨선수권 대회라는 큰 무대에서 4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방 위원은 임은수와 관련해 "(김)연아 못지않게 많은 것을 갖추고 있다"며 "경기력도 뛰어나고 자기관리도 철저히 잘하고 있다. 시니어 데뷔 시즌이고, 또 성장기이기 때문에 자기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항상 일관성 있게 실력을 유지한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빙상연맹(ISU) 소속의 한 해설위원은 임은수의 주니어 데뷔시즌 경기를 본 후 "새로운 시대의 김연아"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더불어 피겨 관련 웹사이트 중 하나인 ‘티에스엘(TSL·The Skating Lesson)에서도 임은수를 ‘차기 슈퍼스타’라고 극찬했다.


◇ 역사를 쓰다. 2018-2019 그랑프리 시리즈


차준환과 임은수는 지난해 모두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지난 시즌 열린 ISU 2018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기록했기 때문. 지난해 12월8일(한국 시간) 차준환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18 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쇼트 프로그램 89.07점, 프리 스케이팅 174.42점, 총 263.49점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차준환의 개인 최고점이자, 그의 시니어 데뷔 이후 첫 그랑프리 파이널 참가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록이다.


차준환의 그랑프리 파이널 입상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해당 시즌의 ISU 그랑프리 7개 대회 성적을 합산, 상위 6명만이 출전하는 ‘왕중왕전’이다. 김연아 이후 그랑프리 파이널에 한국 선수가 참가한 것은 차준환이 최초이며, 이전에 메달을 딴 선수 역시 남녀 통틀어 김연아가 유일했다.


이에 방 위원은 "우리나라 남자 싱글 수준 자체가 세계적인 수준과 격차가 컸다. 그래서 남자 선수들에 대해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차준환 선수가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다"며 "(김)연아 선수가 성장할 때의 그 충격이 똑같이 오고 있는 셈"이라며 차준환의 성적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또한 "피겨 종목 특성상 항상 여자 경기가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얻었음에도 조금 묻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차준환의 파이널 성적은 정말 어마 무시한 것"이라 덧붙였다.


임은수 역시 의미있는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싱글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 메달은 김연아 이후 무려 9년만이다.


임은수는 쇼트프로그램 57.56점, 프리스케이팅에서 127.91점 총 185.67점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다. 시니어 데뷔 시즌에 얻은 성적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또한, 히로시마에서 열렸던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을 클린하며 69.78점을 얻었다. 이는 임은수의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 성적이자 김연아 이후 한국 여자 피겨 최고점이다.


기술 위주의 스킬을 보여주고 있는 현 여자 싱글 피겨판에서 스케일 형 점퍼인 임은수는 단연 주목을 받는다. 임은수는 김연아가 전성기 시절 구사했던 트리플럿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와, 스피드를 이용한 스케일 형 점프를 선보이고 있으며 연기 스펙트럼 또한 넓다.


◇ 피겨의 전설, 김연아와의 연결고리


차준환은 현재 브라이언 오서(캐나다)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고 있다. 브라이언 오서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김연아의 코치로 활동하며 그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한 장본인이다. 차준환은 2015년부터 오서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이때 쿼드러플 점프를 완성했다.


또한 김연아의 선수 시절 대부분의 안무 지도를 담당했던 데이비드 윌슨(캐나다)이 지난 시즌 차준환의 쇼트 프로그램을 맡아 한차례 주목을 받았다.


임은수의 최근 양상은 과거 김연아가 후배들을 위해 국제 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임은수가 주니어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시절, 2017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메달 21개 중 20개를 러시아와 일본이 가져갔다. 남은 한 개의 메달을 임은수가 가져간 것.


피겨 강국인 미국과 캐나다도 힘을 쓰지 못하던 판국에 약소국 출신의 임은수가 뜻깊은 메달 수확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그는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국가순위 3위를 달성해 다음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권 14장을 따냈다.


이전 시즌 좋은 성적을 내야만 다음 시즌 자국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생기는데, 이 국가 순위에서 임은수가 미국, 캐나다를 제치고 대한민국을 3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는 과거 김연아가 후배들의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노력과 유사하다.


◇ 팀 코리아, 2022년 베이징을 향해


차준환은 이미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부상으로 인해 국가대표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마지막 3차 선발전에서 역전 드라마를 쓰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출전 했던 남자 싱글 선수 중 최연소였으며 개인 최고점을 기록해 15위에 올랐다. 방 위원은 "애초에 차준환 선수의 목표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매년 다르게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번 시즌 남아있는 4대륙 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차준환의 앞으로를 전망했다.


임은수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지금으로써는 출전이 유리한 입장이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의 완성도와 부상 없이 성장하는 것"이라며 "여자 선수들 인력 풀은 넓은 편이라 모든 선수들이 베이징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누가 됐던 간에 선배들 못지않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찬 결과를 기대했다.


끝으로 방 위원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항상 겪고 있는 ‘편파판정’ 논란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연아가 선수 시절 겪었던 수많은 논란을 함께 지켜봤기 때문. 그는 “판정 논란은 굉장히 복잡한 부분이다. 우선적으로는 선수가 흔들리지 않고 잘 해줘야 한다. 또 연맹이나 심판진을 비롯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곧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선수들이 빙판에서 혼자 싸우지 않도록 연맹이 지원해 주는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국제 연맹이나 다른 국가들도 우리나라 선수들을 예우해 줄 수 있다”며 “김연아 선수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예전이나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는 지금이나, 선수들이 홀로 싸우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고 지도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안쓰럽다”고 밝혔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까지 남은 것은 단 세 시즌이다. 이제 막 도전하는 길목에 선 어린 선수들에게 어쩌면 ‘김연아’라는 이름은 부담이자 목표일 수 있다. ’제2의 김연아’ 이전에 ‘국가대표’를 가슴에 단 유망주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때다.


younwy@sportsseoul.com


사진 | 스포츠서울 DB, 국제빙상경기협회(ISU)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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