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고인이 된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 박동희는 몇 십년 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특급 투수였다. 1990년 계약금 문제로 입단이 늦었던 박동희는 일본 가고시마 캠프에서 일본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려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캠프에서 시즌처럼 빠른 공을 던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박동희는 1990년 공격력이 좋았던 삼성 라이언즈를 상대로 6연속타자 삼진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후로는 부산고, 고려대 시절 보여줬던 특급 투수로서의 위력을 살리지 못했다. 59승50패 58세이브를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1991년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MLB) 출신 투수를 인스트럭터로 초빙한 적이 있다. 인스트럭터는 하드웨어가 좋은 박동희의 MLB급 강속구에 감탄했다. 하지만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하는 박동희의 구종은 단조로웠다. 인스트럭터는 당시 MLB에서 상한가를 친 투심패스트볼을 한 수 지도했다. 1988년 LA다저스 오렐 혀샤이저는 투심패스트볼을 주무기로 59연속이닝무실점 기록을 세웠던 터였다. 박동희는 끝내 투심패스트볼을 던지지 못했다. 본인도 불안했고 선진야구를 접하지 않은 코칭스태프도 이를 받아 들이지 못했다.

제구력 때문이었다. 투심패스트볼은 홈플레이트에서 가라 앉으면서 휜다. 이른바 싱킹패스트볼이다. 포심패스트볼도 제구가 불안한데 투심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포심과 슬라이더에 투심이 가세됐다면 언히터블급 투수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는다.

KBO리그에서는 코치들이 잘 모르는 이론을 앞세워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 원천봉쇄된다. 코치들은 한 마디 툭 던진다. “하던거나 잘해!” 이 한마디에 선수는 주눅이 들고 새 시도를 포기한다. 목격담이다. 1990년대 후반 교육리그를 통해 투수들에게 서클체인지업이 알려졌다. 시범경기 때 불펜투수가 이 구종을 구사했다. 이닝이 바뀌고 투수코치가 “아까 던진 볼이 뭐야?”라고 물었다. “체인지업입니다”라고 답한 선수에게 돌아온 말이 “네 공이나 잘 던져!”였다.

지난 주 KBO 김용달 육성위원과 요즘 국내 타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덕 래타 타격 인스트럭터의 지도를 이틀 동안 지켜봤다. 종전 코치들의 타격 이론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의 코치들은 타격 때 볼을 최대한 뒤에서 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래타는 반대다. 앞에서 치라고 한다. 볼을 뒤에서 치면 강속구, 브레이킹 볼을 의도대로 타격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래타는 앞의 타격 외에도 밸런스, 자연스럽게 선으로 흐르는 스윙을 주문한다. 그가 운영하는 ‘볼야드’ 클리닉에는 국내의 해외파를 비롯해 메이저리거들이 다수 방문해 지도를 받고 있다. 래타의 타격 이론에 동조한다는 뜻이다.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 토론토 블루제이스 MVP 조시 도널드슨이 대표적으로 래타의 이론을 바탕으로 성공했다. 프리에이전트 대박을 터뜨리고 kt로 이적한 황재균도 16일 이곳을 방문해 시즌에 대비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래타에게 몇 시간 지도받은 뒤 그의 제자라며 돈벌이 수단으로 래타의 명성을 이용하는 야구인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 황재균은 MLB도 잠시 거쳤고 검증이 된 터라 래타의 이론으로 타격할 때 걸림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자비 3000만원을 투자해 1개월 동안 이곳에서 래타의 이론을 받아 들이고 시즌에 대비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모 선수는 앞으로 타격코치와의 충돌이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오랫동안 프로 선수들을 지도했던 김용달 육성위원도 선수의 걱정에 동조했다. “래타의 타격이론을 직접 보지 않은 코치는 받아 들이기 힘들다. 코치들이 열린 마음으로 선수의 새로운 시도를 받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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