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KBO리그 초창기 감독들은 강한 개성과 함께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국내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공과를 떠나 헌액돼야할 지도자들이 꽤있다.

개인적으로 페넌트레이스를 가장 잘 운영했던 지도자로 전 빙그레 이글스 김영덕 감독을 꼽고 싶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권에서 거리가 멀었던 OB 베어스를 우승시킨 것 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다. 큰 경기에서 정면 승부를 피해 해태 타이거스 김응룡 감독의 벽을 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김응룡 전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뿐 아니라 유일하게 해태와 삼성 두 팀을 정상에 올려 놓은 타고난 승부사다. 일본에서 건너 온 김성근 전 감독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야구 경험이 짧은 기자들은 김성근 감독을 접하면 그의 남다른 야구 열정에 푹 빠진다. 현 KBO 총재 고문인 김인식 전 감독은 초창기에도 현재 메이저리그가 추구하는 트렌드인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한국 프로야구의 파이어니어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도 이 전 감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다. 프로야구 초창기 이 육성위원장은 일본 프로야구 명문 세이부 라이온스와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1년씩 연수를 받았다. 특히 카디널스에서는 홈, 원정을 따라 다니며 화이트 허조그(명예의 전당 회원) 감독의 지도 방법을 눈여겨봤고 이후 걸음마 단계의 KBO 리그에 많이 접목시켰다.

이 육성위원장은 1992년 LG 트윈스 사령탑에 오르면서 ‘스타시스템’을 통해 투수와 기자들에게 선발, 마무리 보직을 공개했다. 이 때는 투수들에게 선발, 불펜의 구분이 없었다. 빙그레 김영덕 전 감독이 해태 타이거스의 벽을 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선발, 마무리 구분 없이 투입됐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현 국가대표팀 감독) 때문이기도 했다. 이 육성위원장은 코치들에게도 사실상의 전권을 위임했다.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코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않았다. 미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마무리 김용수가 1이닝 마무리로 롱런할 수 있었던 점, 1군 기량으로는 부족한 이종열(현 KBO 육성위원)이 유틸리티맨으로 활약하며 프리에이전트(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점 등은 이 육성위원장의 선진 야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MLB에서 몸으로 터득한 경험을 국내에서 살렸고 시간이 흐르면서 각 구단에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 전 감독의 선진적인 시도에 제동을 건 측도 있었다. 선수들의 선글래스 착용과 해바라기씨 섭취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들이다. 해바라기씨 섭취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였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4일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이광환 전 LG 감독을 비롯해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선수 20여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선수들은 이 전 감독의 70회 생일을 축하며 SUV 자동차를 선물했다. 2017시즌을 마무리하는 훈훈한 뉴스였다. 이 전 감독은 후배와 제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선배이자 야구인이다. 단순히 23년 전인 1994년 우승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추구했던 야구가 바른 길이었기에 그렇다. 여전히 육성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한국 야구에는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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