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야구는 묘한 경기다. 마무리 투수가 블론세이브를 허용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기는 명승부가 된다.

2001년 벌어졌던 애리조나-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두 팀의 경기는 7차전까지 이어져 월드시리즈 사상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양 팀의 특급 마무리들이 잇단 블론세이브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애리조나의 마무리였던 언더핸스로 김병현은 ‘핵잠수함’으로 통할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시속 152㎞(95마일)의 빠른 볼, 프리스비를 연상케한 슬라이더, 떨어지는 싱커 등 톱클래스 클로저였다. 양키스의 뒷문은 커트패스트볼의 대가 마리아노 리베라가 지키고 있었다.

김병현은 4, 5차전에서 3-1,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홈런을 허용해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4차전에서 연장 10회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을 내줘 클러치 플레이어의 또 다른 상징 ‘미스터 노벰버’를 탄생시켰다. 지터의 홈런이 동부 시간으로 자정이 넘은 11월1일에 터져 뉴욕의 신문들은 다음 날 지터에게 ‘미스터 노벰버’라는 훈장을 달아줬다. 원래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선수를 ‘미스터 옥토버’라고 한데서 빗댄 애칭이다.

연속 블론세이브를 허용한 김병현은 이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애리조나 뱅크원 볼파크(현 체이스필드)에서 벌어진 벼랑 끝 승부 7차전의 희생양은 리베라였다. 양키스는 2-1로 앞선 상황에서 8회부터 리베라를 투입했다. 양키스 조 토리 감독은 리베라에게 6아웃 세이브를 주문했다. 그러나 리베라도 9회 말 안타와 실책으로 위기를 맞은 뒤 토니 워맥의 2루타와 루이스 곤살레스의 빗맞은 끝내기 안타로 블론세이브와 함께 패전 투수가 돼 고개를 떨궜다.

장면을 26일(한국 시간) 다저스타디움으로 돌려보자. 월드시리즈 2차전은 역대 베스트5에 꼽힐 만한 명승부가 됐다. 스코어가 말해준다. 연장 11회 휴스턴의 7-6 승리.

다저스는 6회 말 코리 시거의 역전 투런 홈런으로 3-1 승기를 잡았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27일 이동일을 고려해 전날 1이닝 세이브를 거둔 마무리 켄리 얀선을 8회 무사 2루서 불렀다. 6아웃 세이브를 기대한 호출이었다. 그러나 얀선은 8회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1점 차로 쫓기게 됐다. 9회에는 선두타자 마르윈 곤살레스에게 동점 홈런을 얻어 맞았다. 얀슨의 포스트시즌 첫 블론세이브였다.

3-3 동점이 되자 9회 말 휴스턴 A. J. 힌치 감독은 마무리 켄 자일스를 마운드에 세웠다. 자일스는 세이브 상황의 등판은 아니었다. 휴스턴은 연장 10회 초 이날 리그 최고의 공격수에게 주는 행크 애런 상을 받은 호세 알투베와 코레아가 백투백 홈런으로 5-3 승기를 잡았다. 자일스가 구원승을 거두며 경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지난 9월1일 라이벌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마지막 2이닝 세이브를 한 자일스에게 연장 10회는 부담이었다. 야시엘 푸이그의 4-5로 쫓는 솔로 홈런에 이어 키케 에르난데스에게 동점타를 내주고 강판됐다.

얀선과 자일스 두 마무리 투수는 나란히 승리를 지키지 못했고 월드시리즈 2차전은 팬들의 기억에 남을 명승부가 됐다. 전날 1차전이 투수전의 백미였다면 2차전은 경기 후반 타격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8회 이후에만 무려 9점이 쏟아졌다. 양 팀이 8개의 홈런을 주고 받았다. 휴스턴은 연장전에서만 3개의 홈런을 때렸다. 철벽 구원진을 자랑해 ‘불펜 싸움’으로 이어질 경우 다저스가 절대 유리하다는 예상도 2차전에서 깨졌다. 불펜진은 7이닝 동안 6실점했다. 다저스 불펜의 연속 이닝 무실점도 28이닝에서 멈췄다. 시리즈 전적 1승1패가 되면서 이제 홈구장 이점은 3~5차전을 미닛메이드 파크에서 치르는 휴스턴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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