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의 특징은 불펜 투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오프시즌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을 뜨겁게 달군 선수도 마무리 투수들이었다. 뉴욕 양키스가 계약한 아롤디스 채프먼, LA 다저스 켄리 잰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크 멜란슨 등이다.

이들은 불펜투수 역대 최고 계약으로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동안 마무리 투수의 최다 계약은 3년이었다. 2007년 11월 뉴욕 양키스가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와의 3년 4500만 달러가 최장, 최고액이었다. 각 구단은 마무리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FA 시장에서 불펜투수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절박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난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불펜투수들은 기존의 1이닝 피칭을 벗어나면서 뒷문을 확실히 걸어 잠궜다. 특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마무리로 적합한 좌완 앤드류 밀러를 셋업맨으로 조기에 투입하며 팀을 19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다.

오프시즌 3명의 마무리 FA 계약은 파격 그자체였다. 강속구의 채프먼 5년 8600만 달러(약 969억2200만원), 잰슨 5년 8000만 달러(901억6000만원), 멜란슨 4년 6200만 달러(689억7400만 원)의 대박계약이 이어졌다. MLB 오프시즌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채프먼은 MLB 역사상 160㎞(100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가장 많이 던진 투수다. 팬들에게 전광판의 구속 보기 재미를 안겨줘 역대 최고액 계약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터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양키스의 채프먼보다 다저스의 잰슨이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프먼은 강속구를 제외하면 다른 구종의 위력이 보잘 것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 클리블랜드와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시카고 컵스의 채프먼은 직구의 구속이 떨어지면서 8회 라자이 데이비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 후 멋쩍은 구원승을 챙겼다. 잰슨은 채프먼보다 구속이 8㎞(5마일) 정도 떨어진다. 하지만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징했던 컷패스트볼을 갖고 있다. 올해 이미 성적으로 잰슨(35세이브)이 채프먼(16세이브)보다 우위의 마무리 투수라는 게 입증됐다.

3명의 마무리 투수를 비교한 까닭은 직구 외의 구종이 투수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지난 25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시즌 5승째를 챙겼다. 언론들은 “수술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승리의 원동력으로 체인지업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류현진에게 어깨 수술 전과 후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구속 차이다. 직구 평균 구속이 수술 전에는 147km(92마일) 정도였고 수술 후에는 142km(89마일)로 측정된다. 수술 전에는 직구가 타자를 압도하는 무기였다.

강속구 투수는 구속이 저하되면 난타를 당하기 일쑤다. 류현진은 MLB에서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다. 완급조절과 경기운영이 뛰어난 투수다. 수술 후 구속이 저하됐음에도 전문가들이 “수술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 것은 체인지업이 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직구, 체인지업, 슬라이더, 컷패스트볼, 커브 등 5가지 구종을 구사한다. 체인지업 구사 비율이 25%로 직구 다음으로 높다. 체인지업은 타자에게 직구의 구속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효과를 준다. 팔 동작과 팔 스피드가 직구와 같아 타자가 속을 수밖에 없다. 류현진의 구속이 수술 후에 떨어졌음에도 위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체인지업이다. 전문가들은 타자가 느끼는 직구의 구속은 150㎞대(94마일)라고 평가한다.

MLB에서 통산 269승을 남긴 좌완 제이미 모이어는 40대 이후 직구 구속이 136㎞(85마일)에 머물렀다. 그러나 절묘한 체인지업으로 49세까지 활동했다. 44세부터 46세까지 3년 동안은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타자들은 알면서도 모이어의 체인지업에 당했다. 류현진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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