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은 2003년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했다. 이승엽은 이 해 KBO 리그를 뛰어 넘어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56개)을 쏘아올렸다. LA 다저스 안병환 스카우트는 구단에 적극적으로 이승엽을 알리며 영입을 추진했다. 로스앤젤레스는 한인들이 대거 거주했고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프리에이전트로 팀을 떠나 새로운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필요했다. 이승엽 역시 미국행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부인 이송정 씨와 함께 당시 삼성 구단의 외국인 스카우트 업무를 맡은 이문한 씨의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집을 방문하며 미국 생활에 대한 사전 정보도 입수했다.

그러나 홈런 타자의 메이저리그 행은 무산됐다. 다저스는 개런티 계약은 할 수 없고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시범경기를 통해 기량을 확인하겠다며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제시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승엽 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결국 방향을 바꿔 일본 프로야구 롯데 지바 마린스에 둥지를 텄다.

다저스를 오랫동안 취재한 필자로서는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 무산이 지금도 아쉽다. KBO리그의 최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은 10여년이 지난 후 2014년 LA 다저스 좌완 류현진, 201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가 입증했다. 이승엽은 역대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타자다. 배트 스피드, 파워, 클러치 능력 등 MLB 타자와 견줘 뒤질 게 없었다. 게다가 인간성마저 휼륭하다. 슈퍼스타 가운데 이승엽만큼 겸손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일본은 최고의 타자, 최고의 투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평가를 받았다. 교타자 스즈키 이치로, 홈런타자 마쓰이 히데키가 그랬다. 물론 거품도 있었다. 2006년 주니치 드래건스 출신 후쿠도메 고수케가 대표적이다. 2006년 센트럴리그 최우수선수 상을 수상한 후쿠도메는 이치로, 마쓰이의 메이저리그 성공에 힘입어 2007년 11월 시카고 컵스와 4년 연봉 4천800만 달러(약 544억8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후쿠도메는 ‘먹튀’로 끝났다.

다저스는 2004년 우익수 출신 숀 그린이 1루수를 맡았다.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트레이드된 최희섭이 2004년 백업에서 2005년에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린은 하락세를 보이면서 2004년 시즌을 마치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됐다. 1루 경쟁을 해볼 만 했던 때다. 다저스는 팀의 유망주로 육성한 제임스 로니가 2007년 주전을 맡을 때까지 붙박이 1루수가 없었다. 로니는 2012년 시즌 도중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됐다. 1루수로 파워가 부족했다. 좌타자인 로니는 몸쪽 볼은 홈런을 때릴 수 있었으나 바깥쪽 볼을 좌측 펜스와 좌중간으로 넘기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다저스 공격을 이끈 외야수 맷 켐프(애틀랜타 브레이스), 안드레 이티어(부상중)와의 차이였다.

이승엽은 바깥쪽 코스의 볼을 좌측으로 넘길 수 있는 파워가 충분하다. 강타자는 자기 코스가 아닌 반대편으로 홈런을 칠 수 있어야 한다. 우타자는 우측, 좌타자는 좌측 홈런을 날릴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승엽의 외국 진출이 가능했던 2003년만 해도 MLB는 KBO리그를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으로 취급했다. 요즘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승엽은 비록 MLB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 정상의 기량을 과시했고 이제는 레전드로 현역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다. MLB에서는 2012년 치퍼 존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3년 마리아노 리베라, 2014년 데릭 지터(이상 뉴욕 양키스), 2016년 데이비드 오티스 등 전설들의 은퇴 투어에 팬들이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후반기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 타자의 은퇴 투어에도 팬들의 동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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