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최성은은 대체로 색이 짙은 인물을 연기하곤 했다. 데뷔작인 영화 ‘시동’(2019)에선 빨간 머리와 선글라스로 호기심을 자극했고, JTBC 드라마 ‘괴물’(2021)에선 피해자 유족이면서 범인을 쫓는 경찰로 깊은 감정을 전했다. 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2022)에선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최성은은 지난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을 통해 또 하나의 도전에 임했다. 여자 사격 선수였다가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스스로 무너뜨린 마리다. 중국에서 도망쳐 온 탈북민 로기완(송중기 분)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고 조금씩 성장한다.

첫 등장부터 날카로우면서도 음울한 분위기가 자욱했다. 자신 몰래 엄마의 안락사를 진행한 아버지(조한철 분)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마약에 취하기도 했고, 벨기에 갱들과 얽매여 괴로움을 온몸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 기완이 차려준 집밥을 먹는 장면에서 순수한 미소가 퍼져 나왔다. 기완이 곤경에 처했을 땐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캐릭터의 변화와 감정의 진폭이 큼에도 자연스럽게 처리했다.

최성은은 “마리의 감정을 이해했다. 아빠에게 못되게 행동하는 것도 어쩌면 자신을 미워해서인 것 같았다. 자기한테 생채기 내고 싶은 감정이 느껴졌다. 싱크로율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공감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로기완’으로 데뷔한 김희진 감독은 마리 역을 오디션으로 뽑으려 했다. 수많은 배우를 직접 만났지만, 어딘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던 차에 걸어들어오는 최성은의 얼굴을 보고 직감적으로 마리라고 느꼈다.

극 중에선 타인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심과 깊은 우울감이 엿보였다. 순수하게 생존하고 싶은 기완을 더욱 위태롭게 했다. 끝내 기완이 가진 애틋한 마음을 이해하고 점차 다가가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저는 마리가 순수하고 여린 면을 가진 인물이라 여겼어요. 자신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벽돌을 쌓고 살아온 것 같았어요. 처음 기완과 마주했을 때 마리는 이방인의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엄마에 대한 아픔이 있는 마리가, 힘들게 살면서도 인간적인 기완에게 감정이 터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최성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첫 베드신에 도전했다. 기완과 마리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배우에겐 쉬운 장면은 아니었다. 최성은 역시 부담이 컸다고 했다.

“대본의 수위가 높았어요. 완성본은 아름답지만, 촬영 때는 더 강렬한 느낌이었죠. 이런 장면 자체가 처음이어서 부담도, 두려움도 컸어요. 다행히 촬영은 깔끔하게 마쳤죠.”

상대역인 송중기는 국내 최고의 톱스타이자 능력 있는 선배 배우다. 함께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다. 최성은은 송중기에게 의미 있는 고집을 배웠다고 했다.

“저도 연기할 때 집요함이 있는데, 송중기 선배는 다른 집요함이 있어요. 큰 범위에서 더 단단하죠.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은 설득을 통해 납득시켜요. 저는 뜻이 맞지 않더라도 대체로 감독님 의견을 따르는 편이거든요. 그게 꼭 좋은 결과를 이끌진 않았어요. 중기 선배는 큰 그림을 보면서 더 나은 발전을 이뤄내는 힘이 있어요. 배우고 싶은 면이에요.”

최성은은 ‘젠틀맨’(2022)과 ‘안나라수마나라’를 촬영한 뒤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한번쯤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 아직 후반작업을 마치지 않아 제목도 공개하지 않았다. 연출을 하면서 존재하는 연기를 배웠다.

“카메라 뒤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배우가 그냥 존재해도 되겠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꼭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거든요. 배우가 자기를 믿어야 한다는 걸 배웠죠. 그리고 ‘로기완’에 출연했는데 아는만큼 표현하지 못했어요. 머리로는 아는데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했죠.”

헝가리 로케이션 촬영도, 오랫동안 스태프들과 함께 한 현장도 모두 처음이다. 마음을 크게 여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행복을 느꼈다. 앞으로 더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전에도 현장에서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마음을 다 열진 못했어요. 이번에는 확실히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어요. 이후 런던에서 7개월 동안 휴식을 취하며, 여유가 생겼죠.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아가는 지점이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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