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떠날 때까지 평범한 사과 한마디는 커녕 ‘조롱’하듯 떠났다. 현역 시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알렸으나 지도자가 된 뒤 ‘무능의 극치’가 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다. 대한축구협회(KFA) 정식 발표에 앞서 개인 소셜미디어에 이별을 먼저 알렸는데, 인격까지 의심할 정도로 ‘마이너스 코멘트’였다. 그렇게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축구에 고통과 상처만 남기고 354일 만에 사라졌다.

한국 축구와 클린스만의 만남은 시작부터 우려가 컸다. 지난해 2월27일 KFA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을 이끈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을 잇는 후임 사령탑이었던 만큼 관심이 컸다. 독일 축구의 리빙레전드로 꼽히는 클린스만 감독은 현역 시절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도자로 변신한 뒤엔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국 대표팀을 이끌고 자국에서 열린 200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하며 호평받았지만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2008년 독일 ‘1강’ 바이에른 뮌헨 지휘봉을 잡았지만 9개월 만에 쫓겨났다. 2011년부터는 미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골드컵 우승(2013년)외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당시에도 전술, 전략 부재 비판을 받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성적 부진에 시달리며 2016년 11월 경질됐다. 2019년 독일 헤르타 베를린 감독 시절엔 단 10주 만에 소셜 미디어로 사임을 발표하고 도망가듯 나가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3년 공백 뒤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했으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취임 기자회견 당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인생은 늘 배움의 과정”이라며 “베를린에서 한 건 실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엔 자신의 과오를 숨기지 않고 ‘쿨’하게 인정하는 태도에 긍정적인 반응도 따랐다.

그러나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책임한 태도는 한국 지휘봉을 잡고도 이어졌다. 무책임을 넘어 한국 축구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국에 상주하며 문화를 익히겠다”면서 미래 자원 발굴에도 힘을 쓸 것처럼 약속한 것을 뒤집고 임기 내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줄기차게 날아갔다.

마치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부업으로 여기듯 현지 해설위원 활동과 유럽 주요 구단을 순회하며 ‘월드클래스 놀이’를 하는 데 급급했다. ‘어차피 뽑을’ 손흥민, 이강인 등 유럽파 핵심 선수 관찰이 명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전술 색채 없이 유럽파 개인 능력에 기대는 ‘해줘 축구’로 의존했다. 이들을 대체할 K리거 관찰은 손을 놨다. 대표팀 내 동기부여 실종으로 이어졌다. ‘원 팀 붕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기간 발생한 전술 부재, 주요 선수의 다툼 역시 클린스만 감독의 이런 운영 궤와 함께 한다.

지난해 자신을 향한 논란이 나올 때마다 “아시안컵 결과로 평가해달라”던 그는 요르단과 4강전에서 ‘유효 슛 0개’로 탈락한 뒤 뻔뻔하게 ‘좋은 성과’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후 경기 전날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 등 내부 균열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더는 클린스만 리더십을 따를 수 없게 됐다.

게다가 그는 지난 15일 열린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아시안컵 부진의 이유를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이라고 언급해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제 잘못을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였다.

결국 KFA는 16일 임원 회의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확정했다. 정몽규 회장은 직접 브리핑을 통해 “오늘 임원 회의에서 어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내용을 보고 받아 의견을 모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정 회장 발표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한국과 이별을 먼저 알렸다. 그런데 코멘트가 가관이었다. 그는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대한민국 축구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시안컵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성원해 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아시안컵 4강 이전까지 12개월간 13연속 무패라는 놀라운 여정을 보냈다”고 적었다. 끝까지 자기 반성 없이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약체와 대부분 겨룬 지난 경기 결과를 내세우며 경질 결정을 한 KFA와 한국 축구 전체를 조롱한 것이다.

한국 축구는 클린스만 감독이 남겨둔 위약금 문제나 대표팀 내부 균열 문제 등을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당장 내달 태국과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이 남아 후임 사령탑 선임도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 모로 클린스만호가 남긴 고통과 상처가 깊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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