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강릉=황혜정 기자] “관중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경기한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긴장됐어요.”

만나는 선수마다 이구동성으로 이 말을 했다. 만 14~18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들이 값진 ‘경험’을 했다. 넘어지고, 실수해도 아낌없는 격려를 받았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미래의 ‘성장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이하 강원 2024)’는 ‘경험’과 ‘성장’의 발판이 되는 소중한 무대였다.

쇼트트랙은 전통적인 메달 종목이다. 국민 정서상 ‘금메달’을 당연히 기대하는 게 있다. 그러나 쇼트트랙 청소년 대표팀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강원 2024’ 대회를 마무리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아쉬운 기록이다.

중국의 고의적인 반칙으로 메달 수확에 실패한 것도 있다. 그러나 바퀴 수를 착각하거나 실수로 넘어지며 메달을 놓치기도 했다. 바퀴 수를 착각한 정재희(16·한강중)는 “내가 헷갈렸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큰 선수가 되려면 국제경기에서 잘해야 한다. 이번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중국의 고의적 반칙으로 넘어진 주재희(18·한광고)는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될 것 같다”라며 “비슷한 상황이 또 나온다면 중국 선수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깔끔하게 실력으로 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남녀 쇼트트랙 1000m를 현장에서 직관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솔직히 말해서, 우리 선수들이 넘어져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선수 본인도 아쉬워서 경기 종료 후에도 링크를 계속 돌더라. 이런 실패는 더 큰 대회를 위한 좋은 경험이 된다. 더 잘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거다. 실수를 통해 배운 것만으로도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화 ‘강원 2024’ 공동위원장도 “이런 경험이 있어야 진짜 큰 무대인 성인 올림픽에 가서 실수하지 않는다. 나는 ‘2010 토리노 올림픽’을 통해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는데, 그전에 이런 청소년올림픽을 경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오늘을 통해 더 성장하는 경기였길 바란다”고 넘어진 후배들을 격려했다.

금메달 후보로 꼽힌 여자 피겨 싱글 신지아(16·영동중)도 큰 대회에서 긴장한 탓에 실수하고 말았다. 그는 지난 28일 쇼트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 연기 과제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구현하며 트리플 대신 더블 토루프로 연결하는 실수를 했다.

신지아는 “많은 관중이 찾아주셔서 힘이 됐지만, 긴장도 많이 됐다. 평소 잘 수행했던 점프였는데, 그걸 보여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 빨리 털어버리고 프리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신지아는 실제로 프리 경기에서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했다.

신지아는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큰 관심에 부담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겨내면 경험이 되고 성장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잘 버텨서 메달까지 땄으니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럽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롤모델이자 ‘우상’ 앞에서 경기한 것은 두고두고 남을 경험이라고도 했다.

신지아는 “(김연아 선배님이 경기장에 직접) 와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힘이 됐다”며 경기 후 관중석에서 ‘우상’ 김연아만 찾았다고 말해 취재진에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 22일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은메달을 따낸 정희단(16·선사고)도 ‘우상’ 앞에서 경기하는 영광을 누렸다. 경기 후 정희단은 “이상화 선배님께서 이곳을 찾아 경기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들었다. 지켜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행복했다”며 미소 지었다.

신지아는 “동계청소년올림픽을 겪고 나니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진다. 이번 경험이 성인 올림픽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혼성계주 은메달을 따낸 임리원(17·의정부여고)도 “이번 청소년올림픽 경험이 2026년 밀라노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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