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기자]임진왜란 발발 후 7년, 명량대첩 이후 바닷길이 막힌 왜는 황급히 남쪽으로 회군한다. 전라도와 부산 등 남쪽 방면에 진을 친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갈 궁리를 모색한다.

이순신(김윤석 분)은 왜군을 온전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 다시는 조선을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작정했다. 언제든 칼을 휘두를 생각으로 검을 매만진다. 이순신의 의중을 간파한 왜는 명에 의존한다. 도망칠 길을 만들어 달라 요구한다.

더 이상 군의 피해를 만들고 싶지 않은 명나라 도독 진린(정재영 분)은 계산기를 두들긴다. 남쪽 바다에 진을 치고 있는 시미즈(백윤식 분)에게 구원병을 요구하게끔 길을 터준다. 왜가 잠자코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사실을 안 이순신은 불 같이 화를 내며 출전을 준비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컴컴한 밤, 북소리가 울린다. 곧 불화살이 하늘을 채운다.

20일 개봉읗 앞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 1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1761만명이 관람한 영화 ‘명량’(2014)과 지난해 726만 관객을 동원한 ‘한산: 용의 출현’(2022)으로 이순신의 얼을 그린 김 감독은 그 어느 때 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듯하다. 250억원이 넘는 엄청난 제작 규모에 국내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더 뜨겁고 진한 이순신의 마지막과 100분의 해상 전투가 스크린 위에서 휘몰아친다.

조선과 왜, 명까지 삼국이 노량 앞 바다에서 부딪힌 노량 해전은 임진왜란 모든 전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상자가 일어난 전투다. 7년간의 전쟁을 종식한 전투기도 하다. 크기와 비중, 의미까지 남다른 해전을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한 연출진의 혼이 가득 담겼다. 비장하고 웅장하며 끝내 뭉클하다.

영화는 크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1시간과 해상전투 100분으로 나뉜다. 궁지에 몰린 왜, 그런 왜를 섬멸하려는 조선, 그 사이에서 간을 보는 명의 상황이 부딪힌다. 삼국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전투 신의 CG는 더 정교해졌다. 온갖 폭탄과 불화살이 쏟아진다. 병사들이 선상에서 총칼을 휘두르며 서로의 목을 베는 백병전도 한층 잔인하게 묘사됐다. 덕분에 관객은 긴박한 전투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김감독은 그 사이 서있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냈다. 앞서 ‘명량’과 ‘한산’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이순신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자식과 동료를 잃은 이순신을 꺼낸다. 김윤석은 커다란 눈에 그간 꾹꾹 담아뒀던 인간으로서의 아픔과 슬픔, 그리움, 상처를 담았다. 관객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백윤식은 노련하다. 왜군수장 시마즈에 강한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조선인에게 용납할 수 없는 적장이지만 백전노장의 멋이 깃들어 있다. 왜군 고니시와 아리마 역의 이무생과 이규형이 이야기의 줄기를 만들며, 모리아츠 역의 박명훈이 악을 뿜는다. 진린을 맡은 정재영은 맛깔스러운 연기로 드라마를 넣고, 등자룡 역의 허준호가 색다른 비장미를 표출한다. 배우들은 명과 일본어 연기에 조금의 흠이 없다. 작품 전반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든든한 조선군 최덕문과 박훈은 이순신을 보필하는 충직한 군인의 기개를 표현했다. 이순신의 아들 이회를 맡은 안보현은 묵직한 맏아들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준사 역의 김성규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주며, 이순신의 아내 방씨 부인 역의 문정희가 감정을 부풀린다. 깊이 있는 연기가 작품을 풍성하게 만든다.

7년 간 조선과 왜의 사투를 다룬 이순신 프로젝트는 무려 9년이 걸렸다. 영화를 기획한 시기까지 포함하면 10년이 넘는다. 이순신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마침표를 찍은 김 감독의 노고가 엿보인다. 그 덕분에 다 아는 이야기지만, 뭉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극장을 돌아서게 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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