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아, 내게도 내일이 있지?”

준우승이라는 나무를 열 번 찍어 넘어뜨린 박현경(23·한국토지신탁)이 지치지 않은 동력은 ‘희망’이다. “내가 이정도 선수밖에 안되나”라는 생각으로 베개를 적신 날도 많았는데, 우연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김주형(21·나이키)의 인터뷰를 보다 유레카를 외쳤다.

박현경은 “아홉 번 준우승하면서 좌절도 많이했다. 책도 읽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잘 안돼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도 알고 지내던 (김)주형 선수 인터뷰를 봤는데 ‘오늘 좀 못했어도 내게는 내일 라운드도 있고, 다음 대회도 있다. 오늘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내일 잘하면 된다’고 답하더라. 저조한 성적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이 말이 마음을 때렸다”고 말했다.

골프는 심리적 안정감이 매우 중요한 스포츠다. 매홀 승패가 갈리고, 순위가 결정되므로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2021년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따낸 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는 동안 박현경의 시선 또한 ‘현재’에 집중됐다.

그는 “내게도 분명 다음 라운드도 있고 다음 대회도 있는데 너무 현재, 이 순간에만 집착하지 않았나 반성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치른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도 2라운드에 4타를 잃었는데 “컷 통과했으니 본선에서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진을 털어냈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을 바꿨다.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니 진취적으로 변했다. 덕분에 박현경은 910일 만에 아홉차례 준우승 아픔을 딛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그는 “오늘 당장 짐을 싸지 않아도 돼 좋다. 기분좋게 밤을 보낸 뒤 느즈막히 일어나 짐싸서 다음 숙소로 이동하면 된다”며 방긋 웃었다. 내일이 있다는 건, 박현경에겐 숨 쉴 공간이 됐다.

희망의 가치에 눈을 뜬 박현경은 내친김에 2주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엘리시안 제주 컨트리클럽(파72·6717야드)에서 열리는 에스오일 챔피언십(총상금 9억원)에서 통산 다섯 번째 트로피 수집에 나선다. 그는 “모처럼 우승해서 기분좋은 상태인데, 들뜨지 않고 차분히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결과보다는 매홀, 매타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즌 막바지여서 피로감도 있다. 구내염까지 생겼다”고 컨디션 저하를 인정하면서도 “샷감이 좋은 편이어서 이번대회까지 이 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하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시즌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또한 박현경에게는 ‘희망’이다.

경쟁이 치열한 것도 변수 중 하나다. 시즌 막바지여서 타이틀 경쟁이 불을 뿜는 중이다. 시즌 3승을 따낸 이예원(20·KB금융그룹)은 시즌 상금 13억2668만4197원을 따냈다. 이번대회를 통해 상금왕을 예약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퍼트감은 괜찮은데 샷감은 좋은 편이 아니다. 타이틀에 연연하면 좋은 플레이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타이틀 생각은 하지 않고, 내 플레이에 집중해 톱10에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인왕 경쟁도 이번 대회로 마침표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 신인왕 포인트 1위인 김민별(19·하이트진로)은 2위 황유민(20·롯데)에게 220점 차로 쫓기고 있다. 김민별은 “요즘 샷감이 좋은데, 퍼트만 잘 따라준다면 목표로 하는 우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승하면 신인상은 따라올 것”이라고 속내를 공개했다.

추격 중인 황유민 역시 “목표는 우승이다. 신인상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은 상태”라면서도 “샷과 퍼트감이 나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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