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항저우=김민규기자]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배틀그라운드 모바일(AG버전)’은 애초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의 강세가 점쳐졌던 종목이다.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웠단 얘기다. 그런데 우리 태극전사들은 ‘은메달’을 획득하며 기대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들의 성장일기를 본다면 ‘金’보다 ‘銀’이 더욱더 값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번 대회에는 기존 게임의 대인사격 요소를 배제하고 올림픽 정신을 계승해 ‘스카이다이빙과 오프로드 레이싱, 표적사격’ 등의 재미를 담은 아시안게임 버전으로 치러졌다. 4명으로 이뤄진 4개 팀이 차량을 몰고 정해진 코스를 돌면서 팀워크와 사격점수를 겨뤄 가장 빠른 시간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팀을 가린다. 총 4세트의 랩타임을 모두 더해 최종순위가 결정된다.

기존 게임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선수들에겐 새 버전이 낯설기만 했다. 대표팀은 지난 6월 마카오에서 열린 공식 사전대회 ‘로드 투 아시안게임(RDAG) 2022’에서 처음 AG버전을 접했고, 24개국 중 중국‧대만‧홍콩에 이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사실 중국은 작년부터 선수를 선발해 새 버전으로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다만,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윤상훈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포기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 아시안게임을 위해 주어진 기간 한 달. 서로 다른 팀에서 모인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하루 16시간씩 연습 강행군을 버티며 성장을 거듭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선수들이 흘린 땀이 본 대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RDGA에서 쓴 ‘56분44초’의 기록을 이번 대회에서 최고기록 ‘47분’을 적어내며 9분 이상 단축시킨 것.

대회를 마친 후 만난 사령탑 윤상훈 감독은 “한국에서 합숙할 때 오전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연습을 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와 분석관이 뭔가 새로운 시간단축 방법을 발견해 다시 선수들을 부르면 새벽 4~5시에도 선수들이 다시 나와 연습했다”며 “잠이 부족할 텐데도 불만 없이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 고맙다”고 소회했다.

이러한 감독과 전력분석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이 값진 은메달의 밑거름이 됐다. 금빛사냥을 위한 최대 적수였던 중국은 압도적이었다. 우리나라보다 5분 정도 빨랐다. 연습기간 등 첫 출발선이 달랐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국은 RDAG 당시 2위였던 대만을 제치고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국이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윤 감독은 “중국이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예상했었는데 사실 이 정도일지 상상을 못했다”며 “예선에서 중국이 80% 정도의 실력만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80%를 숨기고 있었다. 우리가 단독으로 연습할 때 거둔 최단 시간을 중국은 실제 경기에서 기록했다”고 밝혔다.

선수들도 중국의 실력을 인정했다. 대표팀의 막내 ‘비니’ 권순빈은 “중국이랑 우리의 연습량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우리는 한 달이란 짧은 기간을 준비했다”며 “그래도 짧은 연습기간 동안 다 같이 너무 잘해줘서 값진 은메달을 따서 뿌듯하다”고 힘줘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 여정이 모두 끝났다. 이를 위해 함께 고생하고 물심양면 도와준 고마운 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우리 선수들은 각 소속팀에서 11월 열릴 최상위 세계대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글로벌 챔피언십(PMGC)’을 준비한다.

윤 감독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며 따라와 준 선수들 그리고 김준수, 한정국 전력분석관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대회를 위해 한국e스포츠협회도 너무 많은 도움을 줬다. 종목사인 크래프톤과 스포츠과학지원센터에도 고맙다. 연습 파트너가 돼 준 덕산e스포츠 아카데미에도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대회에서 드라이버를 맡았던 ‘씨재’ 최영재 역시 “짧은 시간 동안 크래프톤과 협회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해줬다. 우리끼리는 이루지 못했을 텐데 덕분에 2위를 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윤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를 두고 열정을 가지고 리그에 임한다면 1등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은 세계대회에서도 목표 순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2등처럼 세계 1등, 2등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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