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이정후 \'1등으로 왔어요\'
‘2017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13일 서울 강남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넥센 이정후가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 12. 13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만족은 없다. 역대 최고 고졸 신인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정후(20·넥센)가 2018년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지난해 11월 도쿄돔에서 일본 투수들과 상대한 후 앞으로의 과제를 명확히 인지한 이정후다. 웨이트 트레이닝 중 손가락 부상을 당했지만 미리 액땜했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2018시즌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린 타자가 시범경기부터 프로 투수들을 압도했다. 신들린 타격을 선보이며 그라운드에 새 바람을 일으켰고 바람은 폭풍으로 진화했다. 고졸선수 최초로 정규시즌 144경기 살인 마라톤을 완주했고 타율 0.324 179안타 111득점을 올려 세 부문에서 고졸 신인 신기록을 달성했다. KBO리그 10년 만에 순수 고졸 신인상의 주인공이 된 그는 지난달 시상식 기간 가장 바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정후는 “정말 일 년이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1년 전 처음으로 프로에 입단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훈련했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나도 모르게 일 년을 보냈다. 믿고 기회를 주신 감독님과 코치님, 선배님, 구단 직원 분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프로 첫 시즌을 보낸 것 같다”며 “시상식은 아직도 좀 어색하다. 좋은 상을 주시니까 기분도 좋지만 빨리 그라운드에서 더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벌써 그라운드가 그립다”고 수줍게 웃었다.

지난해 고졸신인 역사를 새롭게 쓴 대기록들에 대해선 “이런 결과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시범경기는 물론 개막전부터 1군에서 뛸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기록을 의식하고 경기를 뛰거나 시즌을 보낸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돌아보면 기쁘다. 개인적으로 144경기를 다 뛴 게 가장 마음에 든다. 처음 경험하는 프로 무대라 체력적으로 힘든 점도 많았는데 완주를 했다는 데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원정길에서 밤늦게 도착하고 다음날 바로 경기를 준비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훈련량을 알맞게 조절해 주신 덕분에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번 타자로 고정되기 시작한 6월에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 상대 투수들의 이정후를 향한 견제가 훨씬 날카로워진 시점이었다. 이정후가 타석에 서면 직구보다는 변화구의 비중이 높았고 불리한 볼카운트서도 유인구가 나왔다. 슬럼프가 길지는 않았다. 이정후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 자신 만의 스트라이크존이 만들어지면서 선구안이 부쩍 향상됐다. 개막 첫 두 달 동안 12개였던 볼넷수가 6월에만 16개로 부쩍 늘었다. 굳이 안타를 날리지 않고도 출루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정후는 “프로에 와서 크게 배운 부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만의 존이 생겼다. 내가 쳐서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는 로케이션과 아닌 로케이션이 조금씩 그려진다. 투수의 공을 지나치게 따라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SS포토]첫 타석부터 출루한 이정후, 이종범 코치의 주문
한국 야구대표팀의 이정후(왼쪽)가 19일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1회초 1사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뒤 아버지인 이종범 코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7. 11. 19. 도쿄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더할 나위 없는 2017년이었지만 이제 막 시작점을 찍었을 뿐이다. 이정후는 2017시즌의 피날레가 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수준급 일본투수들과 상대한 경험을 머릿속에 저장시켰다. 한 단계 높은 선수들과 맞대결을 통해 앞으로 나갈 길을 뚜렷하게 그렸다. 그는 “APBC가 정말 큰 경험이 됐다. 특히 일본 투수들이 인상적이었다. ‘볼끝’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마치 공이 한 번 더 가속을 받고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타이밍이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스윙이 늦었다”며 “물론 KBO리그에도 뛰어난 선배 투수들이 많다. 장필준 선배 또한 일본 투수들과 비슷한 ‘볼끝’을 지니셨다. 2018년에는 이런 강한 공도 제대로 때리고 싶다. 왜 웨이트 트레이닝이 필요한 지, 근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힘줘 말했다.

목표도 뚜렷하다. 이정후는 “일본을 이기지 못해 아쉽지만 APBC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 국가대표로 뛰면서 또 다른 경쟁심을 느꼈다. 대표팀에서 뛰기 위해서라도 더 잘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당당하게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만일 이정후가 2018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힐 경우 APBC에 이어 다시 아버지 이종범 코치와 함께 태극마크를 단다. 이 코치는 아들 이정후가 프로 첫 해를 성공적으로 보낸 것에 대해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후가 팀을 잘 만났고 본인이 정말 열심히 잘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빠로서 아들인 정후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이제 2년차를 맞이하는데 분명 1년차와는 또 다른 고비가 올 것이라 본다. 나도 그랬다. 1년차보다 2년차 때가 훨씬 힘들었다. 체력을 보강하고 자신 만의 루틴을 확립해야 기세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이정후는 시상식들이 끝난 후 바로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입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덤벨 기구를 내려놓는 과정에서 오른쪽 약지 손가락을 다쳤다. 골절 진단이 나왔고 회복까지 6주가 필요한 상황이다. 넥센 구단은 이정후가 서두르지 않고 완벽하게 회복하도록 이정후를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미리 2018년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2018시즌 계획에는 차질이 없다. 한국에서 잘 준비하면 시즌에는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정후는 “내게는 2017년보다 2018년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말씀대로 첫 해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막 덤볐지만 2018년은 또 다를 수 있다. 2017년 결과가 잘 나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도 느꼈고 무엇을 더 해야할지도 깨달았다. 부상 당한 것은 아쉽지만 서두르지 않고 보다 착실하게 2018시즌을 잘 준비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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