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주상 기자] 경남 남해부터 강원 철원까지 이어지는 국도 3호선은 남한을 관통하는 국도다. 마지막 종착지인 철원군 앞에 연천군이 있다.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다.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2시간 거리에 있는 등 지형적으로 가깝다. 하지만 남과 북의 대치로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해빙 무드와 함께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지금은 여러 위락시설이 갖춰지며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다.

연천 7경 등이 연천군을 대표하는 명승지지만, 하루에 다 둘러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3호선 국도를 따라가면 연천군에서 ‘꼭 둘러볼’ 명소들이 줄지어 있다.

국도 위 표지판을 흘깃 쳐다보면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 궁평리 먹거리촌 - 좌상바위 - 재인폭포가 나란히 쓰여 있다. 길을 따라가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주중의 하루, 주말의 하루를 국도 3호선을 따라 연천군의 비경을 즐기는 것은 가성비 최고의 관광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대표, 주먹도끼

1978년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수십만 년 앞서게 하며 한국을 아시아 구석기 시대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주먹도끼는 단순하지만 무수한 일 처리를 해내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신석기시대를 한국 역사의 시작으로 설정했다. 자신들의 역사보다 앞서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도 구석기 유적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출토된다며 자신들의 역사를 아시아 앞에 내세웠다.

하지만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자 아시아는 물론 세계역사가 달라졌다.

한두 점도 아니고 무수한 구석기 유적이 출토되며 한국이 구석기 시대 아시아의 중심지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적어도 35만 년 전에 형성된 문화였기 때문에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11년 개관한 전곡선사박물관은 전곡리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을 총망라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 박물관이 됐다. 박물관은 한국에서 발견된 유적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유물도 들여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넓은 대지에 당대 시대상을 재현해 타임머신을 타고 온 구석기 시대로 온 느낌마저 든다. 매년 5월이면 구석기 축제를 열어 학습은 물론 관광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 궁평리 먹거리촌

전곡리를 지나 20분 정도 차를 타면 궁평리 먹거리촌이 눈에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음식점은 망향비빔국수집이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분점이 있는 등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업체로 자리 잡았지만, 시초는 1968년 궁평리에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비빔국수가 대표적인 메뉴로 매일 전국에서 관광객이 맛을 즐기러 몰려든다. 음식점은 강당처럼 컸고, 주차장은 운동장처럼 넓은 정도로 성업 중이다. 잘 익은 백김치로 버무려진 새콤달콤한 국수를 먹은 후 예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한껏 여유를 부리는 호사가 주어진다.

망향비빔국수집 외에도 연천군의 토산품을 재료로 만든 음식점이 주변에 즐비하므로 취향에 맞춰 음식점을 찾는 것도 재미다.

◇ 좌상바위

먹거리촌을 지나 목적지인 재인폭포에 다다르기에 앞서 신답리에 좌상바위가 병풍처럼 한탄강을 둘러싸고 있다. 높이 60여m나 되는 엄청난 바위다. 말이 바위지 산이나 다름없는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한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엄숙함마저 느낀다.

좌상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바위다. 좌상바위 표면을 보면 작은 구멍들이 하얗게 메꾸어져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화산이 분출할 때 공기와 가스가 빠져나간 구멍에 시간이 흐르면서 암석에 있던 칼슘 성분이 빠져나가면서 구멍을 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현무암을 비롯해 변성암, 화강암, 응회암, 각력암, 편마암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암석을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좌상바위는 예전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고 하여 선봉바위, 풀무 모양을 하였다 하여 풀무산, 스님이 앉아 있는 모양이라 하여 좌살바위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어떤 이름보다도 현재 위치하고 있는 청산면 일원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것은 좌상바위다. 좌상은 궁평리 마을 좌측에 있는 커다란 형상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좌상바위는 청산면 일대를 오랫동안 수호해 온 장승과 함께 궁평리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 재인폭포

연천군의 맨 북쪽에 있는 재인폭포는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무수한 숲을 지나 갑자기 땅이 꺼지며 세찬 물결을 지상으로 낙하시키는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폭포 주위에는 한탄강의 지형적 특징으로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어 ‘암석의 물결’도 체험할 수 있다. 재인을 한자로 쓸 때는 ‘ 才人’이라고 쓴다. 재인은 조선시대 놀이꾼 또는 광대라는 뜻으로 쓰였다. 폭포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오랜 옛날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에게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이 고을 수령이 부인에 반해 재인이 폭포 위에서 줄타기하도록 명했다. 수령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재인은 폭포 위에 설치된 줄에서 재주를 부렸지만, 수령의 사주를 받은 하인이 칼로 줄을 잘라 재인을 죽게 했다. 수령은 재인의 부인을 탐하려 했으나,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했다. 그 뒤 재인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름다움과 함께 아련한 슬픔이 공존하는 곳이 재인폭포다. 이전에는 주차장에서 폭포까지 20여 분이 소요됐지만, 올해 5월에 셔틀버스가 개통되며 더욱 편하게 폭포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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