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4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배우 원빈, 이나영의 밀밭 결혼식,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이색 결혼식일 것이다.

2015년 5월 30일, 강원도 정선군의 깊은 산골마을 밀밭에서 선남선녀 아름다운 한쌍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계곡, 숲속, 밀밭 오솔길에서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의 행복한 미소, 옆에 선 듬직한 청년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톱스타 이나영과 원빈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 정선은 원빈의 고향이라고 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자연 속에서 치러진 두 톱스타의 소박하디 소박한 결혼식은 식이 끝나고 나서야 사진으로 공개됐다. 여느 스타들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결혼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일가친척들이 밀밭 앞에 삼삼오오 서있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 둘이 풍금으로 웨딩마치를 울렸다. 이날의 신부 이나영의 손에 들린 부케는 하얀 들꽃이었다. 멀리 산골짜기를 찾아온 하객들을 위해 한 쪽 구석에선 가마솥에 국수를 끓였다고 했다.

지금 봐도 놀랍기만 한 두 톱스타의 결혼식은 이후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스몰웨딩’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색 결혼식은 늘 있었다. 물론 50년 전인 1973년에도 있었다. 그때는 어땠을까. 그해 4월과 5월, ‘선데이서울’에 실린 이색 결혼식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돌아본다.

먼저 ‘선데이서울’ 234호(1973년 4월 8일)에 실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열린 결혼식 이야기다. 당시 서울역 맞은편에 있었다는 동양고속 버스터미널에서는 이 회사 직원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이 이 특별한 결혼식에서 초대받지 않은 하객이 되어 주었다.

신랑 신부가 이날 주고받은 예물은 ‘만년필’과 ‘육아사전’. 열심히 일해 달라는, 태어날 아이를 잘 키워달라는 서로의 소망을 담았다고 했다. 요즘의 수백만 원짜리 시계나 반지에 못지 않은 깊은 뜻이 있었다. 50년 전에는 예물도 이렇게 소박했다.

‘선데이서울’ 같은 호(234호)에서는 ‘하늘에서 신랑이 입장한 행주벌의 이색 결혼’ 에피소드를 특별 칼라 화보와 자세한 스토리 등 모두 4면에 걸쳐 소개했다. 다룬 양으로 보면 특별 취급한 에피소드였다. 내용은 이렇다.

3월 27일 낮 1시, 공군OOOO부대 한 장교(소위)가 동료 20여 명과 3000피트(약 914m) 상공에서 낙하 훈련을 겸한 다이빙 곡예를 하면서 신부가 기다리는 곳에 멋지게 낙하해 부대장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것, 일종의 스카이 다이빙 결혼식이었다.

멋진 공중낙하 묘기에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신혼여행은 신랑의 훈련장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끝이었다. 평생 한 번이라며 추억에 남을 곳으로 신혼여행을 고집하는 요즘에 비하면 정말 소박하다 못해 궁상맞기까지 하다.

이날 비용은 예물비 2만 원이 전부였다고 전해진다. 알뜰 예식에다 하늘에서 하강한 용감한 나무꾼(?)을 신랑으로 맞은 신부는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을까.

236호(1973년 4월 22일)에서는 한창 건설 중이던 지하철역 결혼식이 화제가 되었다. 4월 13일, 당시 서울지하철 공사 현장 감독이 마침 일부 완공된 시청역 역사(驛舍)에서 결혼식을 한 것.

그날은 지하철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주고 홍보도 할 겸 시민들에게 땅 속의 시청역 역사를 공개했던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주례는 당시 양택식 서울 시장,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었겠는가. 이색 결혼식의 덤이자 큰 영광이었던 셈이다.

서울지하철 1호선은 이듬 해인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그런가하면 ‘선데이서울’ 239호(1973년 5월 13일)는 서울 서대문구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향토예비군 7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특별한 결혼식을 소개했다. 신랑 예복은 예비군 군복이었고, 주고받은 예물도 유별났다. 바로 빗자루와 삽.

‘깨끗한 생활을 하자’ ‘열심히 일하자’는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허례허식을 하지말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으니 이런 예물 하나에도 시대 분위기와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청량리경찰서에 근무하던 한 경찰관은 경찰서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예물을 대신해 청사 주변에 전나무 5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결혼기념 식수인 셈이다. 식목은 지금 시대에도 딱 어울리는 결혼 기념 이벤트다.

그럼 요즘 결혼식은 어떨까. 보통 청첩을 받고 온 하객과 혼주가 축하와 감사 인사를 나눈다. 하객은 축의금을 전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써서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하객이 많을 때는 긴 줄을 서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필수 코스, 이후 예식 참관과 연회 참석은 선택 사항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탄 것처럼 순서는 자동이다. 이런 틀에 박힌 결혼식에 반기를 든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지금도 있다. 바로 이색 결혼식이다.

산 정상에서, 동굴에서, 선상에서, 뮤지컬 공연장에서, 달리는 열차에서 등등 예식장을 벗어나 여러 시간과 장소에서 결혼을 약속한다. 물론 대부분 신랑, 신부와 인연이 있거나 사연이 있는 곳이다.

요즘엔 주례 없는 결혼식, 신랑신부와 친구들이 주인공인 파티형 결혼식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을 주인공인 신랑신부의 스타일로 꾸며보고픈 욕심 때문일 것이다.

50년 전, 많은 화제를 뿌린 이색 결혼식으로 관심을 끌었던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남들보다 특별하게 출발했으니 아마도 특별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기념으로 심었던 그 경찰서 전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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