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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내 음악 인생 25년을 되돌아보면,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쳐온 거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1994년 그룹 ‘닥터레게’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바비킴. 25년을 돌아보며 그가 처음 떠올린 단어는 ‘파도’였다.

그의 말대로 그의 음악 여정은 굴곡과 롤러코스터 자체였다. 레게 그룹의 래퍼로 데뷔해 TV 영어 보조 선생님으로 어린이들에게 눈도장을 찍던 시절을 거쳐 아이돌 그룹의 랩 세션으로 무대 뒤에서 움직이던 시기도 있었다. ‘래퍼 1세대’인 그는 국내 힙합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2004년 가수로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알린다. 전성기가 이어지는가 싶었지만 2014년 ‘기내난동사건’으로 끝모를 추락도 맛봤다.

‘소울대부’, ‘랩할아버지’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다양한 흑인 음악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바비킴을 만나 가수 생활 25주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 미국에서 아버지(MBC 관현악단 출신 트럼펫 연주가 김영근)의 영향을 받아 트럼펫을 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음악하는 걸 반대하셨다. 미국에서 몸소 인종차별을 겪으셨고, 현지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걸 피부로 느끼셨던 거 같다. 1991~92년 무렵, 고등학생 때 방황을 많이 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활동도 했다. 기존 가수의 반주곡에 나만의 랩, 노래를 붙여 공연했다.

고등학교 때는 스탠딩 코미디에 도전한 적도 있다. 로빈 윌리엄스, 에디 머피를 동경해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농담을 만들어서 메모지에 적어 서랍속에 넣어놨었다. 아마추어 콘테스트에 나간 적도 있다. 마지막에 나갔던 대회에서는 미리 만들어놓은 유머가 안 먹혀서 즉흥적으로 지어낸 얘기를 10분간 했는데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클럽 관계자가 대기실에서 ‘잠재력은 있어 보이지만 훨씬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그때 코미디언의 꿈을 접고 이후 음악에 몰입하게 됐다.

-93년 레게그룹 ‘닥터 레게’ 래퍼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93년 한국에 건너와 어학연수를 받으며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신세계레코드 회사 오디션을 봤다. 한국어를 한마디로 못하던 시절인데 회사에서 가요 6곡 정도를 테이프에 녹음해줬다. 그걸 들으며 두세곡 정도를 연습했다.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윤수일의 ‘아파트’ 등을 연습했는데 ‘아파트’는 빨라서 못 부르겠더라.(웃음) 그리고 당시 팝그룹 UB40의 반주에 나만의 멜로디와 랩을 붙여 곡을 만들어 오디션을 봤다.

한국어 가사를 영어로 적어 외우던 시절이고 노래도 잘 못 불렀었다. 내 색깔을 찾아가는 단계였다. 오디션 이후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느낌이 안 좋았다.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생각했는데 2주후에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래퍼를 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래퍼로 더 눈에 띈다고 하더라. ‘내 노래는 마음에 안들었나보다’ 싶었고, 랩에도 재미를 느끼던 때여서 수락했다.

그때 ‘닥터레게’ 형님들을 만나 앞에서 랩을 했는데 객원 래퍼 제안을 받았다. 레코드사랑 이미 솔로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는데, 형들이 이후 객원보다는 정식 멤버로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해 하게 됐다.

-래퍼 바비킴은 당시 노래와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의 랩을 해서 마니아층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한국에 현진영, 서태지, 듀스 등이 먼저 나와서 랩을 했었다. 나중에 이현도 형이 나에 대해 ‘레게 그룹의 래퍼지만 정통 래게 랩을 하는 게 아니라 바비 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평가해줬던 기억이 난다.

-‘닥터레게’는 음악성이 뛰어났던 팀이다. 바비킴의 음악 인생에서 어떤 시기였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형님들과 함께 활동하며 ‘프로’가 되었던 시기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 신인 가수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웠다. 개인적으로 많이 부족했지만 노래 연습도 많이 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며칠 동안 콘서트도 해봤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첫번째 단계였다. 닥터레게는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진 못했지만 평론가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방송인 경력도 꽤 오래됐다. 95년 EBS ‘신나는 ABC’에서 영어방송 보조 진행자로 활약했다.

닥터레게 활동 마지막 무렵부터 EBS 등에 출연했다. 영어 교육 방송 보조 진행자로 바쁘게 활동했다. 영어 교육 비디오 테이프 몇편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내 소문이 퍼져서 케이블TV 등에 꽤 출연하며 영어를 하는 캐릭터 역할을 맡았다. 성우로도 활동했다.

-90년대 중후반 가요계에서 랩세션, 랩디렉터 등으로 활발하게 활약하는데.

90년대 중반 댄스 음악 붐이 일면서 랩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96년부터 본격적으로 랩 세션으로 활동했는데 한번 녹음실에 들어가면 한 앨범당 2~3곡 랩 세션을 해서 돈을 벌었다. 비슷한 시기 나처럼 활동한 이로는 빅조, 허인창, 스크래치 등이 있었다.

-96년 터보 2집 ‘트위스트킹’ 도입부 랩이 인상적이었다. 젝스키스의 ‘학원별곡’, 비비의 ‘하늘 땅, 별 땅’,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 등 수많은 곡에 참여했는데 그때 수익은 많았나.

작사비 등을 별도로 받은 건 아니고 랩 세션비만 받았다. 내가 유명하지도 않았고, 지금같은 랩 피쳐링의 개념도 아니었다. 앨범 크레딧에 코러스 혹은 랩세션으로 내 이름이 적히는 정도였다.

-90년대 후반 ‘젝스키스’(젝키)와 작업을 많이 했다. 젝키의 랩스승으로도 유명하다.

97년 젝키 측에서 섭외 제안이 왔는데 랩 세션을 넘어 랩 디렉팅까지 해보는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당시 집안 형편도 안 좋은 시기였기에 수락하게 됐다.

-닥터레게 이후 몇년간 가수가 아니라 스태프로 무대 뒤에서 활약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왜 없었겠나. 나는 무대 앞이 아니라 뒤에서 하는 게 맞는 거라고 받아들이며 살았다. 나름 열심히 했다.

랩 세션을 하며 배운 것도 많다. 마이크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음악적으로 연구하면서 노래하고 랩을 했다. 보컬적인 측면에서 나를 단련시켜준 시기였다.

-98년 첫 솔로 프로젝트 앨범 ‘홀리 범즈 프레즌트(Holy Bumz Presents)’를 발매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수록곡 중 ‘뿌리’가 호응을 얻긴 했다.

98년엔 아이돌 가수, 댄스 음악 붐이 거셌다. 랩세션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윤상 프로듀서와 즐겁게 작업을 했다. 하지만 앨범은 대중성이 없었다. 그래서 활동도 잘 못했다. 노래가 잘 돼야 방송 섭외가 올 게 아닌가.(웃음) ‘뿌리’란 곡은 타이틀곡이 아니었는데 은지원, 거리의 시인들이 피쳐링해준 덕분에 그나마 알려질 수 있었다. 은지원은 이름값 때문에라도 당시 도움을 주기 어려웠을 텐데 흔쾌히 허락해줘 고마웠다.

그 앨범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랩세션맨에서 벗어나 솔로가수로서 데뷔 앨범이었다. 프로듀서와 음악적으로 잘 맞았고, 랩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

-은지원과는 꾸준히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얼마전 은지원 솔로 콘서트 게스트로도 나섰는데.

기특한 게 젝키 시절 큰 인기를 얻을 때도 나를 잘 챙겨줬다. 팬들 앞이나 어디서도 나를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줬다. 97년 젝키의 랩디렉터로 참여할 때부터 팀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친구다. 음악적 관심이 많은, 음악인이었다. 힙합 크루 ‘무브먼트 크루’의 동료이기도 했지만 2004년 ‘고래의 꿈’이 잘됐을 때 가장 기뻐했던 동생이기도 하다.

얼마전 솔로 콘서트를 앞두고 전화가 왔더라. ‘형과 타이거JK가 내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명이다. 꼭 초대 하고 싶다’고. 내가 첫날, 타이거JK가 마지막날 무대에 섰다. 고맙더라. 공연장에 섰는데 울컥했다.

-99년 룰라 이상민이 만든 프로젝트 힙합 그룹 ‘브로스’ 일원으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다.

이상민이 룰라로 활동할 때 나는 닥터레게 멤버였는데, 그때 친해졌다. 어느날 이상민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이 앨범을 만들 건데 래퍼로 참여해 달라는 거였다. 한번 해볼까 싶어서 참여했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이 방송에 출연했고, 바쁘게 활동했다. 래퍼로서 많이 TV에 나오면서 재밌게 음악을 했다. 브로스 앨범에 내가 작곡한 노래(‘A MAN’)도 수록됐다. 노래 프로듀싱은 이상민이 했다.

-‘브로스’ 활동을 하며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브로스 멤버 중 내가 제일 인기가 없었다.(웃음) 디바, 샤크라 등 엄청난 팀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TV 음악 방송에 출연했는데 마침 그날 젝키도 함께 나왔다. 그런데 젝키 팬들이 브로스 무대 때 ‘바비킴, 바비킴’을 연호해줬다. 디바 비키가 공연 도중 나를 보며 ‘오~’라고 놀람을 표현할 정도였다. 환호를 받는 게 그런 느낌이란 걸 그날 알게 됐다. 젝키 팬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앞서 젝키 랩 디렉팅을 할 때 젝키가 큰 콘서트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은지원이 콘서트에서 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대에 나가 팬들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젝키 팬들이 나를 기억했던 거다.

-‘브로스’ 동료이자 제작자였던 이상민은 지금 예능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바비킴이 예전에 지켜본 이상민은 어떤 사람이었나.

이상민은 머리가 대단히 좋다. 브로스 활동 당시 봤던 이상민은 랩도 하고, 작사·작곡도 하는 뮤지션일 뿐만 아니라 음악 프로듀서였고, 앨범 재킷, 사진, 방송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볼 줄 아는 뛰어난 제작자였다.

음악적 재능이 분명 있었다. 음악도 잘 알고, 연구도 많이 했다. 함께 활동할 때 보면 잠을 안자고 항상 노력하더라. 브로스 활동을 하며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요즘 TV에서 보면 예능인으로 맹활약하던데 워낙 예능감이 좋은 친구이니 보면 반갑고 좋다.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했고, 진행 능력도 뛰어나더라. 연예계에 필요한 인물이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스타크루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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