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긴장한 표정의 김학범 감독
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부카시 페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2018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가 열렸다. 김학범 감독이 경기 전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자카르타(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보고르=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운명적인 만남이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를 넘어야 한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과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29일 오후 6시(한국시간) 인도네시아 보고르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서 격돌한다. 결승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김 감독과 박 감독은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비주류에 가까운 ‘잡초’ 같은 축구인생을 보냈다. 김 감독은 프로선수로 뛴 경력이 없다. 국가대표 경험도 전무하다. 실업리그에서 선수로 뛰다 은퇴 후 은행원으로 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도자 변신 후에도 대표팀을 이끈 적이 없다. 성남일화의 황금기를 제외하면 K리그와 중국의 넉넉하지 않은 팀을 주로 맡았다. 박 감독도 유사하다. 김 감독과 달리 프로선수로 뛰었고 태극마크를 단 적도 있지만 눈에 띄는 발자국을 남기지는 못했다. 2002년 코치로 월드컵 4강 신화의 조연으로 활약했다.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으로 일한 후에는 경남, 전남, 상주상무, 창원시청 등을 이끌었다. 지원이 넉넉한 빅클럽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팀들을 오갔다.

국내에서 감독으로 쌓은 커리어만 놓고 보면 김 감독의 명성이 우위에 있다. 성남일화의 전성기를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견인했다. K리그 우승 감독 출신이다. 강원, 성남에서는 강등 위기에 놓인 팀을 구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 부임 직후 FA컵 우승까지 차지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했다. 박 감독의 활약상도 만만치는 않다. 베트남으로 가기 전까지 상주에서 2부리그 우승 및 승격을 견인했다. K리그 최초의 ‘승격 감독’이다. 이제는 베트남에서의 경력까지 추가했다. 다만 상대전적에서는 김 감독이 8승1무1패로 크게 앞선다.

[포토] 박항서 감독 \'생각하는 플레이를 해\'
2018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가 27일 인도네시아 브카시의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브카시(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두 사람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김 감독은 냉철한 전술가다. 스리백이 성행하던 2000년대 초반 포백을 가장 구체적으로 소개한 지도자로 유명하다. ‘비디오 분석의 달인’, ‘공부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휴가 기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의 축구선진국을 방문해 연수를 받았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읽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다. 평소 훈련,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에게 호랑이로 통하지만 경기 중에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선수들을 독려하는 것도 특징이다. 박 감독은 조금 다른 유형의 지도자다.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팀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빼어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얻은 노하우로 베트남을 아시아 축구의 중심으로 올려놨다.

이번 대회 페이스에도 차이가 크다. 한국은 애초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조별리그 1차전서 바레인을 6-0으로 잡으며 기분 좋게 대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키르기스스탄에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16강서 이란을 여유롭게 이겨 다시 한 번 반전을 만들었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던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승자가 됐다. 전체적으로 굴곡이 큰 대회를 보내는 중이다. 이와 달리 베트남은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대회를 치르고 있다. 조별리그를 3승으로 통과했고 16강, 8강에서도 무실점 승리했다. 8강서 시리아와 연장전을 치르기는 했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평탄한 편이다.

27일 같은 장소에서 승리한 두 사람은 서로를 칭찬하며 맞대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박 감독께서 정말 대단한 팀을 만들었다. 안정적이고 조직력이 좋다. 쉽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김 감독은 ‘한국의 퍼거슨’이라 불릴 정도로 좋은 지도자다. 대표팀을 이끌 만한 재능 있는 감독”이라고 칭찬했다. 이들은 평소에도 친한 사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같은 호텔을 쓰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승부 앞에 친분은 의미가 없다. 김 감독은 반드시 금메달이 필요하다. 박 감독도 마찬가지다. 지난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가장 높은 곳에 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박 감독은 “나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베트남 감독이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관건은 체력 회복이다. 두 팀 모두 같은 날 연장 혈투를 벌였다. 그나마 한국이 베트남보다 3시간30분 먼저 경기를 치러 조금 더 유리할 수도 있지만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체력 소모는 베트남이 더 적었다. 28일 열린 공식훈련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가볍게 몸을 풀며 주전급 선수들의 회복에 주력했다. 김 감독은 “빠른 시간 내에 집중해 회복하겠다. 경기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eo@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