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스포츠서울 남혜연 대중문화부장]사람의 온기가 가장 많이 느껴지는 감독일 것이다.

바로 영화 감독 이준익(58)이다. 온화한 미소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처럼 보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그 눈이 매섭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겹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사람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따스하고 배려가 가득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의 영화는 늘 사람의 일상과 그 시대의 아픔을 다루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볼 만해!’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웃다가 울다가 결국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갖게 하는 게 바로 영화감독 이준익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아닐까.

1000만 영화 ‘왕의남자’를 시작으로 그는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현재까지 쉼없는 작품활동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들이 각기 다른 연출방향 그리고 분위기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이준익표 영화’라는 것이 절대 성립되지 않는, 대신 ‘이준익의 마법’은 이해되는 상황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에 대해 “나는 영화 배우, 스태프들이 있는 놀이터의 관리인이기 때문”이라면서 웃기만 했다.

이준익 감독을 만난 그날은 최근의 개봉작인 ‘박열’이 100만 돌파라는 기록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사무실로 축하인사를 하러온 영화 관계자를 향해 그는 “저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에요. 어쩌다 잘 된거에요”라며 허허실실 웃기만 했다. 겸손함 그리고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게 한 것은 아닐까. 감독 이준익 보다는 사람 이준익이 더 궁금해진 인터뷰였다. ②에 이어

- 영화 ‘박열’의 흥행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흥행 소감’이라고 한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소감 자체가 무의미한게… 솔직히 시장 환경 때문에 발생된 기현상이죠. ‘박열’은 상업영화가 아니에요. 오락영화가 아니고. “아!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 “일종의 흥행사고”라고 기사를 썼는데, 그게 맞아요. 영화시장 자체가 제로섬 게임이야. “박열이 이 영화를 돕는건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기현상이라고 봤어요.

만약 이정도 예상을 했다면, 26억에 찍지 않았을거에요. 더 많이 했겠지. 영화복이지, 나는 내 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1000만 감독인 동시에 실패한 영화들도 있습니다. 숙제같은 영화가 있을 텐데요.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과 ‘평양성’은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숙제였죠. 난 상업영화 감독이잖아요. 작가주의나 예술영화 감독이면 “난 하고 싶은 것 할거야. 흥행은 됐어”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요. 상업영화 감독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소재를 기대하는 대중들의 기호를 맞추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 두개를 모두 충족시켜야 해요. 이 두 작품의 경우 대중과 더 폭넓게 소화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죠. 바람은 컸지만, 크게 갖지 말자. 두 영화를 하고 조금 더 지혜로와진 것 같아요.

- 사람 이준익은 어떤 사람인지요.

나는 사람한테 배우는 스타일이에요. 사람한테 배운다는 것은 이런 뜻이 있어요. 태어나서는 부모에게 배우의 대상이 되죠. 그러다 사회적 자의식, 가족이라는 소단위의 사회도 있지만, 학교를 가면서 부터 이것이 형성돼요. 예를들어 나는 집안에서 굉장히 괜찮은 놈이었는데, 학교에 가보니 별 볼일 없는 거였다는 것을 깨닫죠.

30대 까지 그렇게 사회적 자의식을 선배라는 사람한테 배우고, 40대가 넘어가면서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지잖아요? 다수의 분모가 바뀌어 버리는 것이죠. 그때부터 후배한테 배워야 하는 눈을 떠야해요. 나는 그 눈을 50대가 넘어서 떴어. ‘왕의 남자’ 때가 47세였어요. 항상 자기 부족감에 시달렸고, “나는 왜 이렇게 모자라지?” “항상 미달이지?”라고 평생을 그러고 살았어요.

동년배나 선배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월의식이 없었어요. 자존감은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러한 우월한 사람에 대한 동경, 예를들어 더 도덕적이고, 배려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난 왜 저사람들 처럼 못하지?”라는 결핍이 있었죠. 더 긍정적이거나 폭넓은 이해력이 있으면 열등감이 막 들었어요. 결핍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내 인생은 그렇게 빅사이즈가 아니에요.

바이크를 탄 지는 꽤 오래됐어요. 또 출퇴근이나 미팅을 갈 때도 항상 스쿠터를 타기도 하고요. 잠을 굉장히 중시해서 11시 전에는 꼭 잠에 들고, 평생 아침을 안먹어 본적이 없어요. 새벽 5~6시 사이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와요. 해가 떨어지면 집에 가서 씻고 잠이 들고요. 가끔은 오후 9시에도 잠이 들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회의도 절대 밤에 안해요. 공무원처럼 일해요.

- 최근 문화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블랙리스트 같은.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변화가 있었을까요?

과거에… 나의 일상은 힘듦은 없었어요. 대신에 사회적인 스트레스, 에너지가 굉장히 힘들게 감싸고 있었죠. 지금은 그 자체를 인식하지 않아요. 일상의 행복이 회복된다는 것 처럼 좋은 것은 없잖아요. 현재라는 것은 과거로 부터 연상되는 현재의 어느 순간이잖아요. 날을 세우고 각을 세우던 순간이 지났죠. 그것은 부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아요. 모든 현상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하니까. 역기능의 소중함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그 자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깨어나게 했잖아요?

- 마지막으로 사람 이준익의 꿈은 무엇일까요.

난 꿈이 없어요. 진짜 없어요. 꿈에 대한 명제를 구체화 시키려는 강박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난 벌써 50대 후반이에요. ‘학교에서 꿈을 가져라’고 했지만, 일상은 꿈을 가져갈 수 없었어요. 척박한 환경속에서, 오늘 눈앞에 있는 것을 감당해 내야하는 70~80년대를 보냈죠. 그때의 명제는 눈앞의 현실을 얼마나 빨리 극복해 내느냐가 중요했죠. 일상의 윤택함이 없었지만, 궁핍함이 있었죠. 지금의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개인의 궁핍함이 커진 것 같아요.

whice1@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