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다 오리에[포토]
한국 여자 프로당구 LPBA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히다 오리에가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재기(再起) 과정도 월드클래스다. 6전 7기 끝에 국내 여자 프로당구 LPBA 챔피언에 오른 히다 오리에(47·SK렌터카·일본)는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와 더불어 세계 여자 3쿠션을 대표하는 ‘리빙 레전드’다.

당구 선수로 활동한 부모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큐를 잡은 히다는 만 20세이던 1995년 일본프로당구연맹에 등록, 정식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교한 샷이 장점인 그는 세계여자선수권대회 3연패를 포함, 통산 4회 우승(2004 2006 2008 2017)을 차지하는 등 20년 가까이 톱랭커로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해 여름 LPBA 진출을 선언,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대와 다르게 뜻밖에 슬럼프에 시달렸다. 서바이벌, 뱅크샷 등 낯선 LPBA 경기 룰과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뿐더러 ‘망막박리(망막이 안구 내벽으로부터 떨어지는 증상)’ 진단을 받고 시즌 도중 수술대에 올랐다.

히다 오리에[포토]

히다는 14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지난 시즌 중) 갑자기 어느날 한쪽 눈이 안 보였다.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리니 캄캄하더라. 너무 놀라서 집 근처 안과에 갔더니 큰 병원 가라더라. 그리고 하루 이틀 안에 수술 안 하면 실명할 수 있다는 얘기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낯선 한국 땅에서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터라 경황이 없었다. 그러나 은인이 존재했다.

그는 “당시 보호자가 없었는데 (내가 사용하는) 큐 회사 관계자께서 병원에 와주셨고, 한 일본인 여성분도 수술할 때 돌봐주셨다. 또 알고 지낸 캐롬클럽 사장께서 내가 수술한 뒤 홀로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3주간 자기 집에 머물게 했고, 그의 어머니께서 나를 챙겨주셨다”고 밝혔다. 히다는 더욱더 강한 마음을 품었다. “이렇게 많은 분이 도와주시는데, 내가 정말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히다는 애초 왼쪽 눈 시력이 1.0이었으나 0.1까지 떨어졌다. 원근감이 중요한 당구 선수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그러나 맞춤식 안경을 착용한 뒤 스트로크에 변화를 줬다. ‘긍정의 힘’도 작용했다. 히다는 “눈 부상에 관계없이 에버리지를 더 높이기 위해 (스트로크 스타일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마음을 품고 2022~2023시즌을 대비했다.

지난 시즌 시행착오도 착실하게 돌아봤다. 그는 “LPBA는 (공격 제한시간이) 35초로 스피드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당구 테이블도 일본보다 딱딱한 편이어서 볼이 민감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더욱더 정교함을 갖추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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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프로당구협회(PBA)

A26O0597 히다 오리에 우승 세리머니
제공 | 프로당구협회(PBA)

불굴의 정신력으로 부상을 이겨낸 히다는 올 시즌 2차 투어(하나카드 챔피언십)에서 LPBA 데뷔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오른 데 이어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에서 끝난 3차 투어(TS샴푸·푸라닭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결승에서 이마리를 세트스코어 4-2(11-7 9-11 11-10 11-3 9-11 11-7)로 제압하며 상금 2000만 원과 우승포인트 2만 점을 얻었다.

히다는 “2004년 세계선수권을 처음 우승했는데, 당시 선수 레벨이 전체적으로 높은 건 아니었다. 현재 LPBA는 선수의 레벨이 높다. 그래서 이번 우승의 감정이 색다르고 믿기지 않는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은 선수층이 매우 두터워졌다. 이미래나 김보미처럼 젊고 재능 있는 선수가 활약하면서 당구를 하고자 하는 어린 선수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목표를 잡고 성장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히다 오리에[포토]

히다는 팀 동료이자 주장인 강동궁의 개인 훈련장이 있는 경기 화성시 동탄에서 지내고 있다. 어느덧 1년 3개월째 한국 생활을 하는데 최근 들어 한국어 과외 수업을 받는 등 좀 더 국내 문화를 익히려고도 노력 중이란다. 그는 “(과외 교사 뿐 아니라) 강동궁도 당구 용어 등 한국어를 잘 알려준다. 가족이 한국 드라마를 매우 좋아하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빠져든다고 하더라. 나도 (한국어를 익힐 겸) 관심이 있는데 훈련 시간이 줄어들까 봐 일부러 안 보고 있다”고 웃었다.

LPBA를 접수한 히다는 “팀리그에서 소속팀에 공헌하고 싶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임한 것처럼 LPBA에서도 온 힘을 다하겠다”며 16일 엘리시안 강촌에서 열리는 PBA팀리그 2라운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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