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2002)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시절 고 유상철(왼쪽) 전 인천 감독과 윤정환(가운데) 제프 유나이티드 감독의 모습. 스포츠서울DB

2002 FIFA 한일월드컵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 J리그에서 뛰던 최용수 황선홍 윤정환 유상철(왼쪽부터).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코로나19가 어느 때보다 참 야속하네요.”

일본 J2리그 제프 유나이티드 사령탑인 윤정환(48)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다가 7일 세상을 떠난 선배 유상철(50)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빈소를 찾지 못한 것에 무척 속상해했다. 윤 감독은 9일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이틀 전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문자로 상철이 형 소식을 알려왔다. 곧바로 부고 기사를 봤는데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더라”며 “당장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 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윤 감독은 유 전 감독과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각급 대표팀에서 오랜 연을 맺었다. 청소년 대표 때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았고 1993년 버팔로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나란히 주력 요원으로 뛰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연령별 메이저 대회는 물론, A대표팀에 함께 승선해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까지 굵직한 역사를 함께 했다. 일본 J리그에서도 나란히 선수 생활도 했다.

현역 시절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친 윤 감독에게도 유 전 감독의 축구 재능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요즘 멀티 플레이어가 대세라고 하나 그 당시엔 그런 개념이 거의 없었을 때였다”며 “상철이 형은 그런 개념을 한국 축구에 안긴 창시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정말 땜빵 역할이 아니라 어느 포지션에 둬도 100% 제 기량을 발휘했다. 정말 멋있는 선배였다”고 돌아봤다.

윤 감독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시절엔 유 전 감독과 룸메이트를 지내면서 주요 경기에서 ‘더블 플레이메이커’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같은 방 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상철이 형은 공도 잘 찼지만 어떠한 순간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서 귀감이 됐다. 그렇게 몸과 마음 모두 건강했던 사람인데…”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0
1990년대부터 한국 축구 주력 요원으로 지낸 고 유상철(왼쪽) 감독과 당시 동료로 지낸 최성용 노정윤 하석주 윤정환 홍명보. 스포츠서울DB

일본에서 활동하는 터라 윤 감독은 유 전 감독과 가장 최근에 만난 게 재작년이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이 묶이면서 시즌 중 한 번도 귀국하지 못했다. 게다가 J2리그는 한시즌 정규리그만 팀당 42경기를 치른다. 컵대회까지 포함해서 연말까지 쉼 없이 달리는 구조다. 겨울 휴식기도 짧다. 윤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지난해 말 귀국했으나 2주 자가 격리를 보낸 뒤 사흘가량 가족과 만난 뒤 곧바로 일본으로 복귀했다. 그 이후 역시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재작년에 한 행사에서 상철이 형과 만났다. 당시에도 투병 중이었지만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그래서 다시 만나 골프도 친 적이 있다”며 “그 이후 상철이 형이 지속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윤 감독은 “과거 고 조진호 선배도 그렇고 상철이 형도 그렇고 너무나 젊고 큰일을 해야 할 분인데 안타깝다”며 “동시대를 함께 한 후배로 정말 선배를 영원히 기억하면서 더 축구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축구계에 선·후배들이 지도자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로 큰 병을 얻는 경우가 있는데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유 전 감독의 장례는 9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축구인장으로 치러졌다. 발인 등 장례 절차는 유족 뜻에 따라 가족과 일부 대한축구협회(KFA) 관계자 및 축구인 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유 전 감독의 유족은 부인 최희선 씨와 2남(선우·성훈) 1녀(다빈)가 있다. 유 전 감독은 경기도 용인평온의숲에서 화장 후 어머니를 모신 충북 충주시 양성면 진달래메모리얼파크에서 영면한다. 그는 인천 사령탑 시절인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벤치를 지키며 극적으로 팀의 1부 잔류를 이끌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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