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광주=황혜정 기자] “자동-볼 판정 시스템(ABS) 도입에 맞춰 커브를 집중해서 던지려고 한다.”

‘대투수’도 변화를 선언(?)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전격 도입한 ABS 때문이다. ABS는 투구 궤적을 카메라로 추적해 홈플레이트 위 가상의 스트라이크 공간을 통과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전자신호로 주심에게 전달해 ‘일관성있는 볼판정’을 돕는다. 시범경기 때부터 적용했는데, 예년에 비해 꽤 넓어졌다는 평가다.

스트라이크존이 넓으면 투수에게 유리하다. 물론 ‘제구되는 투수’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대투수’로 불리는 양현종(36·KIA)은 제구되는 투수다. 그런데도 그는 “각이 큰 커브를 활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양현종은 “ABS에서 중요한 건 홈플레이트(위 가상의 스트라이크존)를 무조건 지나가야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는다는 점”이라며 “각이 큰 변화구를 집중해서 던지려 한다. 포수가 낮은 쪽에서 잡은 공도 일단 센서만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 체인지업도 변화를 줘야 한다. 여기에 슬라이더와 커브도 변화가 심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ABS 시행을 결정한 직후부터 커브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ABS는 공이 홈플레이트 앞뒤 중간면과 맨끝면 두 곳의 스트라이크존 상·하 라인을 모두 스쳐야한다. 때문에 타자는 ‘비슷하면 돌리고 보자’는 마음으로 임한다. 모든 코스에 대응할 수는 없으니, 약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식 어퍼블로를 지향하는 KBO리그 타자에게는 높은쪽이 약점이다. 리그 전체를 들여다봐도 하이 패스트볼을 마음먹고 공략할 수 있는 타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투구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행위다. 히팅포인트, 배트 중심을 비껴가는 게 첫 번째다.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는 볼을 잘 던지는 투수가 에이스 칭호를 받는 이유다. ‘체인지업 달인’으로 꼽히는 양현종은 그래서 커브에 집중했다. 양현종의 체인지업은 묵직한 속구와 최상의 조화를 이룬다. 디셉션(볼을 숨기는 동작)이 좋은 편인 양현종은 패스트볼이 대포처럼 날아든다.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가라앉는 체인지업은 그래서 그의 ‘결정구’다.

패스트볼은 높은 쪽으로 던지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높은 쪽으로 날아드는 체인지업은 위험하다. 장타를 헌납할 수 있어서다. 시즌 첫 등판이던 26일 광주 롯데전에서도 체인지업을 낮게 던지는 데 집중했다. 좌타자 바깥쪽으로 날아드는 슬라이더, 우타자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 모두 스트라이크존 하단에 집중 분포됐다. 두 구종 모두 70%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 것으로 집계돼 양현종의 제구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나 KBO리그 타자들은 낮은 공을 곧잘 공략한다. 타이밍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장타 부담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 시선을 흐트러뜨리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래서 꺼내든 것이 커브다.

높은 속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 타자는 의식할 수밖에 없다. 커브는 태생자체가 살짝 떠올랐다가 크게 가라앉으므로, 투수의 손을 떠나 높은 쪽에 형성되면 반응을 해야한다. 같은 원리로, 벨트선 쪽으로 날아들다 발목까지 가라앉는 커브는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낮은 체인지업, 슬라이더에 당했으니, 비슷한 높이라면 배트를 내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최저 115㎞까지 구속을 떨어뜨리면, 타자로서는 시선과 타이밍을 모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양현종의 커브는 완벽한 제구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회전이 빠르고 잘 떨어지는 편이다. 요소요소에 배치해 ‘커브도 던진다’는 인식만 심어줘도 운신의 폭이 넓다. 실제로 이날 양현종은 총투구수 90개 중 커브를 5개 섞었다.

양현종은 “올시즌 ABS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커브나 각이 큰 변화구를 잘 이용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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