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행동이 자유자재로 거침이 없다는 뜻의 종횡무진. 요즘 이 단어는 배우 이정은에게 제격인 듯싶다. 올해 초 JTBC ‘눈이 부시게’부터 영화 ‘기생충’, KBS2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지난 6일 종영한 OCN ‘타인은 지옥이다’까지. 2019년은 이정은의 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이정은은 지난 1991년 연극 ‘한 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와니와 준하’, ‘불후의 명작’, ‘마더’ 등 상업 영화에도 얼굴을 비추다가 드디어 지난 5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으로 변신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주역들도 더욱 빛나게 됐고, 이정은 역시 ‘기생충’의 구심점으로서 대표적인 중견배우로 손꼽히게 됐다.

사실 ‘기생충’ 이전 JTBC ‘눈이 부시게’에서도 이정은의 존재는 돋보였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시어머니 김혜자(김혜자 분)를 바라볼 수밖에 없어 가슴 아파하는 며느리로 분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김혜자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자 “아니야. 그런 얘기 하는거 아니야”라며 아이처럼 끌어안는 이정은의 모습은 뭉클한 잔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사실 당시는 이름이 알려진 상황도 아니었고, 비중 역시 크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로 몰입도를 높여 스스로를 빛냈다.

이정은

특히 최근에는 동시기에 정반대의 캐릭터로 등장해 또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27년 만에 딸 동백(공효진 분) 앞에 나타난 어머니 조정숙으로 분해 뭉클하게 했다. 조정숙은 동백이 “잘 사셨나봐요. 곱게 늙으셨네. 어떻게 살이 쪘지. 자식 버린 여자가 왜 그렇게 살이 쪘어. 나는 엄마 덕분에 더럽게 못 살아”라고 직언을 날려도 말없이 햄버거만 먹는다. 그리고는 아주 맑게 “아가, 너는 예뻐졌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이같은 행동은 치매를 앓아서 그런 거였는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조정숙은 동백에게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걸로 집사”라며 쌈짓돈을 건넨다. 동백을 떠난 매정한 어머니이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로 변주했다.

반면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는 음침한 에덴 고시원 주인 엄복순으로 분해 소름돋는 연기를 펼쳤다. 엄복순은 다정해보이지만 이는 결국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장치로, 본모습은 아무렇지 않게 살인에 동조하는 무시무시한 캐릭터. 숨이 끊어진 변득수(박종환 분)에게 “득수가 먼저 천국행 열차 탄거야? 그래 천국 빨리 가면 좋지 뭐”라며 태연하게 말하는가 하면, 새 입주자 윤종우(임시완 분)에게 “이 방에 살던 사람 자살했어”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다. 푸근한 인상과 섬뜩함을 적절히 양분해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이정은

마지막 회에서는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살해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은 그동안 마주하기 어려웠던 이정은의 또 다른 면모라 더욱 뇌리에 남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제작진은 “현장에 오실 때도 엄복순 옷차림으로 오셨다. 원래 옷 스타일이 그런 편인 줄 알았는데 일부러 일상에서도 캐릭터에 녹아들기 위해, 옷을 엄복순 스타일로 입고 다니신 거였다. 또 스릴러 장르물은 무섭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맞나 싶었다. 무서움을 극복하고 촬영에 집중하셨다”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어떤 장르에서든 뚜렷하게 자신의 색깔로 연기를 변주하고, 일상에서도 작품을 위한 열정을 내보이는 이정은. 대중은 또 한 명의 ‘믿고 보는 배우’가 탄생해 반기는 분위기다. 그의 연기에 감탄하고 위로받을 수 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더욱 기대를 모은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OCN,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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