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용규 [포토]
한화 이용규. 배우근기자kenn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사실상 선택지는 백기투항 뿐이다. 한화가 트레이드 요청으로 파문을 일으킨 이용규에게 구단 내규를 근거로 ‘무기한 참가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선수의 동의가 필요한 임의탈퇴나 웨이버공시가 아닌 어감상 무기징역과도 같은 ‘참가활동 정지’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구단이 이번 사태를 그만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화 관계자는 “구단 내규에 의거한 징계이기 때문에 선수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협상의 여지가 없이 백기투항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눈길을 끈 대목은 한화 선수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했지만 연봉은 지급한다는 점이다. 선수 연봉 지급에 관한 규정은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구단 자체적으로 어떤 징계를 내리더라도 임의탈퇴 등 선수 동의가 필요한 징계를 제외하면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웨이버 공시도 마찬가지다. 7일간 영입하려는 구단이 없으면 계약한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연봉 3억원 이상 고액연봉자가 부상 등이 아닌 이유로 1군에 뛰지 못할 경우 개막일부터 일수를 계산해 총 연봉의 300분의 1에서 50%를 더 감액한다. 단순환산하면 이용규의 일당은 66만 6667원 가량이다. 월급 2000만원(한 달 30일 기준)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구단 기강을 저해해 ‘팀의 질서와 기강은 물론 프로야구 전체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로 간주한 선수에게 구단이 제공하는 어떠한 혜택(훈련 포함)을 박탈하고도 2000만원씩 급여를 지급하는 묘한 모양새다.

임의탈퇴로 묶기에는 선수가 동의하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고 웨이버공시를 통해 방출 수순을 밟으려니 데려가겠다는 팀이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여 더 큰 지출을 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프로야구선수협회 김선웅 사무총장은 “이용규가 트레이드를 요청사실을 공개한 시기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구단이 자체 내규로 무기한 참가활동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한 것 역시 오해를 살만 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무기한 참가활동 정지처분은 KBO가 심각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 대해 상벌위원회를 통해 내릴 수 있는 사실상 최고 수위 징계다. 불법 도박이나 음주운전, 성폭행 등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형이 확정된 선수들에게 내려졌다. KBO 정금조 운영본부장은 22일 “한화가 어떤 근거로 무기한 참가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는지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자체적으로 내규 등의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KBO 의판단으로는 이용규 사태가 상벌위원회에 회부될만 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는 입장을 보였다. 구단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사안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구단이 ‘프로야구 전체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고 판단한 것과 KBO의 시각은 온도차가 있다.

법조계는 “구단 자체 내규로 징계를 내렸다고 해도, 사전에 내규 내용을 이용규에게 고지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피계약자에게 이른바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면, 계약자에게는 각종 규정에 대한 고지 의무가 있다. 임의탈퇴나 웨이버 공시, 자유계약 등 KBO 규약에 따른 징계절차는 물론 구단 내부 규약을 계약과정에 선수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변호사이기도 한 김 사무총장은 “이번 일이 소송으로 번지는 등 악화일로를 걷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선은 한화 구단 내규에 참가활동 정지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또 해당 조항을 선수 본인에게 충분히 공지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자칫 구단의 슈퍼갑질로 변질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괘씸죄에 걸린 선수를 자체 내규를 근거로 참가활동 정지 등의 처분을 내릴 경우 선수의 인권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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