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병학 인턴기자] '닥터 K'에서 '유리몸'. 별칭만 봐도 박명환(40)이 얼마나 다사다난한 야구 인생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한때 리그 최고의 파워피처에서 잦은 부상으로 쌓아왔던 명성을 잃기까지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윗물과 아랫물을 마셔본 선수는 박명환이 유일했다.


코치가 되자 특이했던 박명환의 경력은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됐다. 현재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팬더스의 투수 코치로 지내고 있는 그는 과거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선수들에게 꿈과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는데 활용하고 있다. 묵묵했던 투수에서 살가운 코치로 변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에이스'로 군림했던 두산시절


충암고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모든 스카우터들은 박명환을 주시했다. 서울 소재 학교였기에 크게 고려대학교와 LG 트윈스,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가 박명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당초 고려대 우선 진학 후, 2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넘어갈 계획이었으나 최종 선택은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고려해 파격 조건을 제시한 OB였다.


그는 "어머니는 파출부를 하셨고, 아버지는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잘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본을 보내준다는 고려대의 조건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생각했어야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고기를 사주시더니 OB로 가자고 설득하셨다. 그렇게 나는 OB의 선수가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고졸 신인 최고 계약금인 3억원을 받고 OB에 입단한 박명환은 무려 11년 동안 팀의 에이스 노릇을 맡았다. 배영수(한화), 손민한과 함께 '우완 트로이카'라 불리며 리그 대표 투수로 군림했다. 150km에 육박하던 직구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고속 슬라이더, 두 구종 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이었다"라고 말했다.


▲양배추 잎의 추억


2005년 한화전에서 웃픈 해프닝이 일어났다. 투구 도중 모자가 벗겨지면서 양배추 잎 하나가 땅으로 툭 떨어진 것이다. 그는 "갑상선 항진증 때문에 몸에 열이 많아 날씨가 조금만 무더워지면 투구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아내가 얼린 양배추 잎 9장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준비해줬다. 이걸 머리에 얹고 마운드에 들어서니 시원한 게 집중력도 좋아졌다"라며 "9이닝을 다 채우지 못한 날이면 잎이 몇 장 남는다. (김)동주 형이나 (홍)성흔이 형이 '이거 효과 좋냐?'라며 대신 쓰고 했다"며 웃었다.


양배추 잎이 땅으로 떨어진 날,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큰 화젯거리가 됐다. 그는 "다음날 경기장에 가려고 집 밖으로 나갔더니 카메라 20대 정도가 진을 치고 있었다. 살면서 받을 관심을 그때 다 받았던 거 같다. 훗날 갑상선 항진증 진단서를 끊어오면 양배추를 머리에 얹게 해주겠다는 말이 나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더라"며 "그냥 안 쓰고 던지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닥터 K'의 추락


LG의 유니폼을 입은 박명환은 상대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고교시절부터 이어진 혹사로 잠자고 있던 어깨 부상이 뒤늦게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하루도 어깨가 안 아픈 날이 없었다. 진통제와 아이싱을 달고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고통이 뒤따랐다"고 전했다.


뒤늦게 불거진 부상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결국 감내해야 하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많은 기대를 줬던 LG였기에 재기하는 모습도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은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재기의 꿈은 방출의 칼바람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어느 날 가족 외식을 나갔는데 옆자리에서 한 LG 팬이 제 욕을 하더라고요. 직접 가서 사과드렸습니다. 꼭 재기하겠다고. 죄송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약속 지키지 못했죠. 연봉 삭감을 당할 때도 방출 통보를 받을 때도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다만 LG 팬들에게 멀쩡한 모습 한 번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아직도 죄송스럽죠"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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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김도형 기자 wayn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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