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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의 풍경.
[인천=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우선 말해두자면 인천은 굉장한 매력을 품은 도시다. 여행을 떠나야 할 그 이유를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 옹진군의 푸른 바다를 품은 인천에는 근대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 또한 숨어있다.사실 개인적으론 원래 인천하면 생각나는게 월미도의 무서운 바이킹과 디스코팡팡,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 노랫말 속 성냥공장 정도였다. 아! 하나 더 짜장면의 고향이란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우리 삶 속 많은 것들의 원조가 바로 인천이었다. 당연히 이리저리 둘러볼 것이 많다.게다가 추석 연휴긴간 서울을 기준해 동쪽과 남쪽 대부분이 귀성행렬로 막히지만, 서쪽에 위치한 인천은 그리 막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린 지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차하면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둘러갈 수도 있다. 이런 곳, 연휴 기간 중엔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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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에는 개항장의 옛모습이 오롯이 남아있다.
◇원조의 도시 인천

철도, 성냥공장, 짜장면, 사이다, 각국조계지, 청관, 야구, 해관, 외국인재판소, 쫄면 등이 인천에서 한국 최초로 시작된 원조(元祖)들이다. 1917년 생겨난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당시 필수품이던 성냥을 생산했다. 여공들이 많았던 터라 이상한 구전가요가 생겨날 정도였다.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가 됐어도 꼬뿌(컵)없으면 못마십니다”라는 고 서영춘 씨의 만담처럼 청량음료 사이다 역시 인천이 원조다. 1905년 일본인 히라이야마 나쓰타가 인천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 ‘인천탄산수 제조소’를 차리고 ‘별표사이다’와 ‘일생표 사이다’를 제조했다.

달고 톡쏘는 신기한 맛의 사이다는 해방 후까지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1950년대 칠성사이다가 전국을 제패하면서 인천의 공장은 7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끝내 사라졌다.

야구도 인천에서 역사적인 첫 ‘플레이볼’을 외쳤다. 야구를 처음으로 소개한 선교사 질레트(면도는 인천이 처음이 아니다)가 1905년 황성기록청년회(현재 YMCA)의 회원들에게 야구(격구)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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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 제일은행 건물은 현재 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에게 국수를 비벼팔았던 공화춘 짜장면의 유래야 원래부터 유명하고,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해외이민인 ‘하와이 이민’ 역시 인천항에서 출발했다. 우리에게 파인애플 브랜드로 잘 알려진 돌(Dole)이 미국-하와이 병합 후 첫 주지사가 되며, 사탕수수 노동자 수급을 위해 대한제국에 이민을 요청했다. 미 본토의 중국인 이민 금지법과 일본인 쏠림을 막기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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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박물관(구 일본 제일은행)에는 옛 인천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수탈로 피폐해진 민생은 이민 모집공고를 보고 하와이로 떠날 것을 결심했다. 1902년 출발한 첫 이민선 갤릭호는 나가사키항을 거쳐 태평양을 횡단해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1905년까지 총 64회 7415명의 이민자가 제물포 항을 떠났다. 뜨거운 열사의 땅에서 하루 17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을 견뎌낸 첫 세대 이민자들은 악착같은 근성으로 생면부지의 땅에 뿌리를 내렸고, 피땀 흘려 번 돈을 한푼두푼 보내 인천에 대학을 세웠다. 그게 바로 인하대학이다. 그들이 떠난 인천과 하와이의 앞글자를 하나씩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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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는 지금 예술을 생산하는 거대한 아트플랫폼이 됐다.

인천에 왜 수많은 ‘원조’가 많은 지 궁금해 이유를 알아봤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천이 중국 상하이처럼 개항지이자 조계지였기 때문이다. 구한말 청과 일본을 비롯해 외국 공동 조계지가 지금의 차이나타운 인근에 들어섰다. 서구문물이 인천을 거쳐 이 땅에 상륙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국제교역의 장이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당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과 물건이 인천에 발을 디뎠다. 지금 최첨단 첨탑과 마천루로 가득한 송도국제도시를 보면 국제도시 인천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임을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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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 타운.

◇인천에 상륙한 모든 것

지금은 땅이 되버려 “왜 지명에 도(島)자가 붙지?”하고 갸웃거릴 월미도(月尾島)에는 현재의 디스코팡팡과 바이킹 이전에도 끔찍한 비명소리가 가득 채운 적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그마한 동산으로 보이지만 월미도는 둑방에 연결된 섬이었고 수도권 탈환을 위한 최고의 교두보였다. 1950년 9월 15일 이곳에 아군이 상륙함으로서 약 2주 뒤인 28일 감명깊은 서울수복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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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을 상징화 한 친환경 전기차를 타고 월미공원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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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을 이끈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심이 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전세를 단박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바 있다. 3곳의 상륙지 중 하나였던 월미도를 바라볼 수 있는 자유공원에는 리암니슨(?)의, 아니 맥아더 장군의 당당한 동상이 서있다. 바다는 간척이 되고 육지로 바뀌었지만 레드, 그린, 블루비치의 상륙지는 현재도 그 자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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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월미도에는 당시 포격에도 살아남은 7그루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2001년 월미도의 군부대가 이전한 후 이곳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인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보이는 월미공원 정상(108m)을 감싸도는 산책로(2㎞)를 따라 요모조모 구경거리가 많다. 걷다보면 ‘평화의 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 과정에서 월미도에 수천 발의 포탄과 네이팜탄이 날아들었다. 쑥대밭, 아무것도 남지않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살아남은 수목이 있었다. 수령 245살의 ‘평화의 어머니 나무(느티)’를 비로스 ‘치유의 나무(은행)’,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은행)’, ‘영원한 친구 나무(상수리나무)’ 등 일곱 그루를 찾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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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의 역사를 한눈에 설명해주는 상징물. 청인과 왜인, 조선인이 함께 있다.

월미공원과 자유공원을 둘러본 후 신포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현대인들에겐 쫄면과 닭강정으로 유명한 시장이지만, 예전엔 인천에 발을 딛고 사는 왜인들과 청인들이 푸새(채소)며 생필품 등 난전을 벌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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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공원전망대.

현재 차이나타운과 일본 가옥들이 정확하게 길 하나를 두고 가르고 있는 곳은 약 130년 전(1883년) 문을 연 개항장이다. 지금의 인천공항처럼 수많은 외국 선박이 이 곳에 들어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내려놓았다. 커피와 호떡, 요깡(羊羹) 등 신식문물이 유행한 인종의 멜팅폿이었다. 현재 인천 중구청은 이곳을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 과거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의 즐거운 먹거리 투어도 좋지만 아랫쪽 일본 거리도 볼만하다. 목조로 지어진 구 일본 우선주식회사 건물은 맛난 커피와 단팥죽을 파는 카페가 됐고, 석조 자연채광의 신식건물이었던 구 일본 제일은행 건물은 현재 개항박물관이 됐다.

개항박물관에는 당시 인천에 최초로 놓인 철도와 등대에 대한 기록 등 다양한 신문물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봐도 경이로울 정도니 옛 선조들이 봤을 때는 과연 어땠을까 상상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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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인천 먹방투어

인천은 먹거리도 참 많다. 짜장면과 포춘쿠키 등 중국음식은 기본. 그외에도 물텀벙거리, 화평동 냉면골목, 밴댕이 골목 등 이것저것 찾아 먹을 것이 많다. 특히 냉면에 대해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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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경인면옥 물냉면.

인천에는 역사가 무려 70년 된 평양냉면의 명가가 있다. ‘경인면옥’이다. 1947년 최초로 개업해 3대째 이어오는 노포로서 우리가 미처 알지못하던 인천 냉면의 원류를 자부한다. 물론 평양에서 내려온 집이다. 평양냉면이면 평양이지 왜 인천냉면인가. 이유는 그렇다. 평양에선 겨울에 메밀틀에 국수를 뽑아 주로 동치미를 떠서 말아먹었다. 꿩이 잡히면 육수를 섞고 고기는 거의 꾸미로 올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외국 공관이 많은 인천에는 고기부스러기를 구하기 쉬웠던 터라 인천 냉면에는 고깃덩이를 푸짐하게 넣고 육수를 냈다. 그것이 역으로 전국으로 퍼져 현재의 평양냉면 요릿법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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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사곶냉면.

여기다 인천과 가까운 황해도 냉면이 가세했다. 옹진군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됨에 따라 황해도 장산곶과 붙어있는 백령도의 냉면이 인천항에 상륙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사곶냉면이다.

백령도에선 냉면 육수를 낼 때 돼지뼈를 보통 넣는데, 이곳 사곶냉면 역시 뽀얀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낸다. 독특하게도 까나리 액젓을 테이블마다 준비해주는데 이 맛이 입에 짝짝 붙는다. 섬에서 생겨난 냉면의 특징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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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송도맛집 참예그리나의 보리굴비 정식.

송도국제도시는 이제 막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지역주민과 인근 회사원들로부터 가족단위 송도 외식 맛집으로 사랑받는 집이 있다. 미추홀 타워 별관에 자리한 ‘참예그리나’인데, 이 집 음식은 직접 준비한 반찬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메뉴에 정성이 깃든 것으로 유명하다.

한정식 상차림을 기본으로 찌개나 나물, 구이, 볶음, 국 등 각각 재료와 양념, 조리방식이 한상에서 잘도 어우러지게 차려낸다. 수라상, 전복삼합, 전골 등 푸짐한 식사메뉴에 더해 최근에 선보인 ‘보리굴비 정식’은 서울의 웬만한 고급 한정식집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맛나고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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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녹찻물에 샛노란 강황밥을 말고 그위에 보리굴비를 올려 먹자면, 입안에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깊은 풍미가 한참을 돌다 사라진다. 참예그리나.

녹찻물에 만 강황밥 위에 꾸덕꾸덕 말린 보리굴비를 찢어 올려 한 숟가락 맛보자면 그 짭조롬한 맛이 입안에 가득 풍미를 채운다. 가격은 그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점심 기준 1인분 1만5000원으로 보리굴비에 미안할 정도다. 점심에는 식사를, 저녁에는 회식을 할 수 있고, 주말에는 가족모임을 가지기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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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시티 동산호 우럭찜.

드림시티 쪽에는 민어회와 생대구탕, 꼼장어 등을 파는 동산호가 있다. 술꾼들에겐 이미 입소문이 난 집인데, 말린 우럭 등으로 한 찜도 맛이 좋아 소주 몇병이 그냥 들어간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은 거대한 실내·외 구조물로, 이곳에서 디오라마 등 전시물을 통한 인천상륙작전의 세세한 과정을 볼 수 있다. 당시 무기와 군복, 각군의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1903년)의 등대가 서있는 팔미도 역시 상륙작전을 앞두고 켈로부대의 역사적인 등대 탈환작전이 펼쳐진 곳이다. 월미공원 전망대에선 서해바다부터 인천항, 인천공항, 송도국제도시, 인천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월미달빛마루 카페에선 파노라마 전망과 함께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월미공원에 간다면 꼭 한 번 들러봐야 할 곳이다. 월미공원사업소 (032)765-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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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그랜드 인천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요리를 선보였다.

●잘곳=송도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은 추석 연휴를 겨냥해 ‘추석 여휴(女休)’와 ‘추석 브런치’ 패키지를 선보였다. 어머니, 아내의 명절 피로를 날려버릴 스파와 조식을 포함한 ‘추석 여휴(女休)’ 패키지에는 숙박, 스파 하스타 이용, 조식뷔페를 포함했으며 ‘추석 브런치’ 패키지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네 2인 브런치를 묶었다.

[보도자료] 쉐라톤 그랜드 인천, 추석 여휴(女休) 패키지
쉐라톤 그랜드 인천 추석 여휴(女休) 패키지.

한편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네’는 버터와 치즈, 메밀의 산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의 정통 요리를 이달 9일부터 10월 말까지 선보인다.

발텔리나 지역의 메밀을 이용한 홈메이드 생면 피조케리 파스타, 석류 그라니테 등과 함께 빵 가루를 입혀 살짝 튀긴 밀라노 정통 스타일 또는 참숯에 구운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 또는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코스요리로 즐길 수 있다. 단품으론 프로슈토 꼬또 피자, 단호박과 탈레지오 치즈소스의 펜네 파스타, 엔초비가 들어간 통밀 스파게티 파스타 등을 맛볼 수 있다. 세트 메뉴 7만9000원부터, 단품 메뉴는 1만5000원부터.

●맛집=참예그리나(032)260-1301. 사곶냉면(032)469-1645. 동산호(032)858-1880. 경인면옥(032)762-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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