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_ 9아토ENT,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3)

[스포츠서울 | 심언경기자]

“굳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더 망가지고 싶었다.”

3년여 만에 인터뷰를 위해 취재진을 마주한 배우 정일우(35)는 성숙하고 영근 분위기였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진짜 어른’이 된 그는 “많이 내려놨다”고 했다. 이제 망가짐도 서슴지 않는단다.

ENA 드라마 ‘굿잡’에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는 극 중 은선우 역을 맡았다. 은선우는 낮에는 초재벌 은강그룹의 회장으로, 밤에는 탐정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분장과 스타일링에 힘을 줬다.

“탐정과 회장으로 캐릭터를 분리해서 생각했다. 회사에 있을 때 말투에도 변화를 주려고 했고, 의상은 ‘포멀’하게 입으려고 했다. 외부에 있을 때는 변장을 하거나 파격적으로 입었다. 상반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1회에서 노인 분장도 하고, 카지노 갈 때 장발도 했다. 특히 탐정일 때 입으려고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옷들을 직구했다. 두 캐릭터가 다른 인물처럼 보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이 드라마는 최근 ‘보쌈’에서 훌륭한 합을 보여준 정일우와 권유리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정일우는 “‘서로에게 플러스가 될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둘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현대극에서 호흡을 맞추면 훨씬 재밌고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든든함이 있었다”고 권유리와의 재회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권유리에 대해 “굉장히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대본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해했던 장면들을 너무나도 잘 소화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 보인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항상 밝고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모습에서 큰 에너지를 받았다. 밤샘 촬영이 많았는데 흐트러지지 않았다. 굉장히 배울 점이 많았다”고 극찬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다른 출연자들까지 매번 작품 회의에 참여해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도 없다는 정일우는 은선우와 돈세라의 스킨십 역시 토의한 결과라고 했다. “대본에 없지만 세라와 손을 잡는 장면이 꽤 많이 나왔다. 그런 부분을 (두 사람의)연결고리로 가져가려고 했다. 세라와 선우의 아역이 손을 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진한 스킨십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겠다 했다.”

‘보쌈’ 애청자들은 은선우와 돈세라를 바우와 수경의 환생으로 해석하며 작품을 즐겼다. 이 가운데 전작에 없었던 키스신의 등장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정일우 역시 이러한 반응을 고려해 더욱이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자 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세트 안에서도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그러다 ‘책상 키스’를 해보자고 해서 (권유리가)내 무릎에 앉아서 키스를 하게 됐다. 둘 다 그 장면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하려고 했다.”

사진제공_ 9아토ENT,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3)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대개 2~3%대(이하 닐슨코리아 기준)에 머물렀고 최고 3.2%를 기록했다. 전작이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던 만큼 부담감이 컸을 법하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ENA 채널 인지도가 확 올라갔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우리 드라마를 보시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히려 동시간대 방영되는 작품이 더 신경 쓰여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발목인대가 파열돼 약 3주 동안 쉬기도 했다는 그는 성적보다는 큰 사고 없이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한 번만 3% 넘으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3%도 넘고 동시간대 1위도 해봤다. 별로 시청률에 집착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부담이 덜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돼서 만족한다.”

그의 데뷔작은 2007년 종영한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벌써 15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데뷔 때부터 스타덤에 오른 그는 당시 하나하나가 벅차고 두려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젠 (‘거침없이 하이킥’이 주는)부담감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 작품 덕분에 아직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뷔 초 ‘가진 것도 없고 재능이 없는데 왜 이렇게 사랑해주지. 다 사라질 건데’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어느덧 17년 차 배우가 됐다. 이젠 걱정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생산적인 고민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느 순간 유연해지고 단단해지더라. 많이 아프기도 했고. 이젠 배우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생 어떻게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작품이 잘되면 감사하지만 스스로 만족도를 높이려고 한다. ‘굿잡’에서 더 망가지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다. 배우가 굳이 멋있어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노메이크업으로 촬영하고 싶었는데 뜯어말리더라. 하하. 벗어낼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진제공_ 9아토ENT,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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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935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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