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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빈의 세컨드로 참석한 정찬성이 승리 후 기원빈과 함께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버팅으로 찢긴 상처가 눈에 선하다. 사진 | 기원빈 SNS

[스포츠서울 | 이주상기자] “사람들이 지난 경기와 최근 경기들을 보면서 한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멈춰줘 있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시합이 만족스럽지 않고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 척도는 성장이다. 격투기로 본다면 원래부터 강하게 타고났고 센스가 있는 사람이 잘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건 약하게 태어났고 센스가 없더라도 부단한 노력과 과정으로 성장해서 그들과 나란히 서고, 또 넘어서는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 더 강한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얼마만큼 성장했고 발전했는지, 성장의 크기가 나에겐 중요하므로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고 결국엔 해낼 것이다. 반드시 보여주겠다.”

‘케이지의 신사’ 기원빈의 말이다. 기원빈의 나이는 31살이다. 적지 않는 나이지만 격투기선수로는 한창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나이이기도 하다. 기원빈은 지난 9일 싱가포르 싱가포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ROAD TO UFC’ 에피소드 1&2에 출전했다. ROAD TO UFC는 UFC 계약을 놓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선발된 최정예 선수들이 경쟁하는 대회로 기원빈은 라이트급에 출전해 일본의 강적 카시무라 진노스케(20)에게 1라운드 4분 4초 만에 엘보우에 의한 TKO로 승리했다.

기원빈은 2014년 MMA 무대에 오른 후 8년 동안 16승 7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숫자들이다. 2019년에는 일본의 글래디에이터 챔피언이 올랐고, 지난해에는 한국단체인 더블지FC 챔피언에 오르며 아시아에서 라이트급 최강자의 지위를 차지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초연한 모습에, 항상 진중하게 MMA를 대하는 모습에 팬들은 그에게 ‘케이지의 신사’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단체로 향하는 그의 길은 구도자의 그것처럼 진지하기만 했다. 승리하면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패배하면 심연의 깊은 곳에서 더욱 자신을 성장시킨다. 격투기 ‘최고의 남자’ 기원빈을 만났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소감은.

처음에 소식을 접하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격투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목표이자 꿈이었던 UFC 무대를 나이와 깔끔하지 못한 전적 때문에 밟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각오를 했다. 출전했을 땐 항상 생각해왔던 무대의 느낌을 몸에 새기려고 했다. 새롭고 행복했다.

-1라운드에서 경기를 끝냈다.

상대가 주짓수 스페셜리스트여서 그라운드로 끌고 갈 거라고 예상했다. 세컨드인 (정)찬성이 형 말대로 상대는 하체로 들어왔고 잘 방어한 후 잡아놓고 엘보우로 때리기 좋은 상황이 와서 그대로 마무리를 지었다. 상대가 셀프가드를 하면서 버팅으로 눈 위에 커팅이 났는데 그땐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서 KO시키지 않으면 닥터스톱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끝났다.

-4강전과 결승전에 임하는 전략과 각오는.

나는 닥치지 않은 미래를 먼저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 4강전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없어서 찢어진 부위가 회복되면 바로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준비할 생각이다.

-4강전 상대인 인도네시아의 제카 사라기에 대한 분석은.

아직 자세히 보기 전이지만 무에타이 베이스로 알고 있다. 타격에 자신 있다면 누가 더 강한 타격을 가졌는지도 보여줄 생각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상황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

-UFC 진출 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결국 챔피언이 되는 나를 그려본다. 인간은 바라는 만큼 발전하고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챔피언이 돼 영향력 있는 선수가 될 나의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UFC 라이트급에서 싸우고 싶은 상대는.

너무 많다. 현재 라이트급에는 흥미로운 선수들이 아주 많아서 다 궁금하다. 언젠가는 저스틴 개이치, 더스틴 포이리에, 찰스 올리베이라 등 랭커들과 경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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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기원빈의 팔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 UFC

-평소 훈련 스케줄과 훈련 내용은.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비시즌에는 파워 훈련, 시즌에는 컨디셔닝까지 포함해서 운동한다. 오후에는 3시부터 5시까지 선수부 훈련을 한다. 요일마다 하는 게 다르고 스파링 위주로 훈련한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필요한 스킬들을 연습한다. 복싱이나 주짓수, 레슬링 등 격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훈련한다. 최근엔 다쳐서 재활 프로그램도 소화했다.

-더블지FC, 글래디에이터, 로드FC를 거쳤다. 단체마다 성격이 다를 텐데.

글래디에이터라는 단체는 첫 해외 단체였고 챔피언을 하게 돼 나에게는 의미 있는 단체다. 내가 거친 일본 단체는 글래디에이터, 슈토, 딥, RINGS, 아웃사이더 등 이었다. 일본은 격투기 역사가 깊어서 진행이 깔끔하고 관중들도 타국에서 온 선수라도 잘하면 리스펙을 해주고 예의를 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는 로드FC와 더블지FC에서 뛰었는데 일본보다 규모가 더 크고 점점 더 발전하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인터뷰나 홍보 또한 잘 되고 지인들도 많이 응원올 수 있어서 좋았다. 당연히 음식도 잘 맞고, 좋은 기억만 있다. 이번에 경험한 UFC는 신세계였다. 일단 규모가 비교할 수 없게 컸다. 그리고 선수가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부 서포트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감량할 때 필요한 것들, 계체 후에 먹을 것들, 시합 때 전문가들이 직접 테이핑해주는 등 진행 방식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롤모델은.

(정)찬성이형이다. 내가 경험한 찬성이형은 일단 격투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선수로서, 코치로서의 태도 등 리스펙 할 수밖에 없었고 본받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 MMA 시장에 끼친 영향력들이 대단해서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다.

-취미는.

솔직하게 격투기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격투기에 시간을 쏟아 부어서 시간이 부족하지만 한가한 시간에는 아내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여러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재밌는 걸 찾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보완할 점은.

방어적인 부분들을 많이 생각한다. 내가 워낙 공격 성향이 커서 분배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격투기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원초적인 매력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남자들 세계에서 단순히 ‘누가 누구랑 싸우면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에 대해 직접 보며 즐길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어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격투기에 빠진 계기는.

격투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만화도 격투기와 관련된 것을 자주 봤다. 크면서 프라이드나 K-1을 챙겨봤다. 운동을 늦게 시작했지만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입학 후 학교 앞에 체육관이 있어 상담받으러 간 게 여정의 시작이 됐다.

-팬들이 멋진 매너 때문에 ‘케이지의 신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닉네임이 있는지 몰랐다(웃음). 아마 시합 때 나의 태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는 격투기를 스포츠지만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격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너무 존경한다. 나도 시합을 준비하는 과정을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승패와 관계없이 존중을 표현한다. 아이러니할지도 모르지만, 시합 땐 죽어라 싸우고 끝나면 ‘다치지 않았나?’ 걱정이 되는 게 내가 가진 생각이라 그렇게 봐주시는 거 같다.

-격투기 외에 하는 일은.

코치를 하고 있다. 크로스핏과 MMA를 가르치고 있다. 코치는 회원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코칭을 해서 운동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게 하고 싶다.

-나에게 격투기란.

격투기는 내 인생이 됐다. 삶의 맥락은 다 똑같다고 보기에 나는 격투기를 하면서 많이 느끼고 배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할 때 행복하다.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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