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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표팀 세트피스 중심 구실을 할 이강인, 이동경, 권창훈(왼쪽부터).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한국 축구가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 성공 사례를 쓸 때 세트피스 전술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이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을 때다. 조별리그 첫 경기 그리스전(2-0 승)에서 기성용의 코너킥을 수비수 이정수가 오른발 결승골로 연결했다. 16강 여부가 달렸던 나이지리아와 최종전(2-2 무)에서는 기성용의 프리킥을 다시 한 번 이정수가 득점으로 연결한 데 이어 박주영이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들며 2골 모두 세트피스로 해결했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10년 남아공 대회까지 월드컵 무대 7회 연속으로 세트피스 득점을 터뜨렸다.

세트피스는 코너킥이나 프리킥 등 공이 정지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약속된 플레이다. 기술이 좋은 키커를 앞세워 높이와 힘 등 특징을 지닌 동료 간의 시너지를 잘 이루면 충분히 득점에 도달할 수 있다. 과거 축구 변방으로 꼽힌 아시아 국가가 세계 무대에 도전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할 수 있는 루트가 바로 세트피스였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축구 수준이 꽤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메이저 대회에서 세트피스 득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로 재미를 봤지만 올림픽에서는 유독 침묵했다.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25년의 역사만 돌이켜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 올림픽 본선에서 총 31골을 터뜨렸는데 세트피스 득점은 단 1골(페널티킥은 제외)에 불과하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 카메룬전(1-1 무) 당시 박주영의 오른발 프리킥이었다. 그 외엔 모두 필드골이나 페널티킥으로만 해냈다. 올림픽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인 동메달 신화를 쓴 지난 2012년 런던 대회에서도 한국은 총 5골(조별리그 2골·8강전 1골·동메달 결정전 2골)을 기록했는데 세트피스 득점은 없었다. 조별리그에서만 12골을 넣으며 올림픽 한 대회 최다골을 기록했던 지난 2016년 리우 대회에서도 세트피스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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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이강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올림픽에서 세트피스 징크스만 깨도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2020 도쿄올림픽 본선을 앞둔 김학범 감독도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지난달 30일 최종 명단 발표 이후에도 본선 첫 경기까지 ‘조직력 강화’를 목표로 꺼내면서 ‘세트피스 전술’을 화두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강인(발렌시아), 이동경(울산), 권창훈(수원) 등 3명의 왼발잡이 선수를 언급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세트피스 전술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심은 역시 이강인이다. 스페인 라 리가를 누비는 그는 발렌시아에서도 프리킥이나 코너킥 등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 활약한 적이 있다. 2년 전 한국 축구가 U-20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황금 왼발’을 뽐냈다. 고비였던 세네갈과 8강전, 에콰도르와 4강전에서 각각 절묘한 왼발 코너킥과 프리킥으로 득점을 끌어냈다. 이동경은 김학범호에서 이미 검증된 왼발 프리키커다. 올림픽 본선 티켓을 손에 넣은 지난해 1월 AFC U-23 챔피언십 8강 요르단전(2-1 승)에서 후반 추가 시간 버저비터와 같은 왼발 프리킥 결승포로 웃은 적이 있다. 여기에 와일드카드 자원인 권창훈은 낙차가 큰 슛을 자랑한다.

김 감독은 최종 명단을 구성할 때 세트피스 키커 뿐 아니라 이들과 시너지를 낼 자원의 역량도 중점적으로 살폈다. 센터백 자원인 정태욱과 와일드카드 김민재는 세트피스에서 위협적인 머리를 자랑한다. 또 윙어 송민규는 키 179㎝에 불과하나 K리그1에서 ‘헤딩 머신’으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위치 선정과 마무리가 장점이다. 비공개 훈련을 통해 세트피스 전술을 가다듬고 있는 김학범호의 저력은 오는 13일 예정된 아르헨티나와 평가전에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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