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울산 현대 사령탑으로 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에 도전하는 홍명보 감독.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월드컵은 내 운명.’

한국 축구 월드컵 역사의 산증인과 다름 없는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52) 감독이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 울산 현대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다. 홍 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4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얀에 있는 아흐메디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0 FIFA 클럽월드컵 개막전(6강전)에서 멕시코의 강호 티그레스 UANL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애초 클럽월드컵은 매년 12월 열리지만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대회가 2월로 연기돼 치러지게 됐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무패 우승(9승1무)을 해낸 울산은 ‘아시아 챔프’ 자격으로 이 대회에 나선다. 반면 티그레스는 지난해 창단 이후 처음으로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면서 ‘북중미 챔프’로 출전하게 됐다. 울산-티그레스전 승자는 4강으로 직행한 ‘남미 챔프’ 파우메이라스(브라질)와 8일 오전 3시 결승행 티켓을 두고 겨룬다.

이 경기는 3년 6개월 만에 현장 지도자로 컴백한 홍 감독의 복귀전이자 K리그 사령탑 데뷔전으로 관심을 끈다. 지난 2017년 5월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는 그해 11월부터 지난해까지 대한축구협회(KFA) 전무이사로 활동했다. 이 기간 디비전 시스템 구축 등 KFA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며 행정가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현장 지도자로 못다한 꿈을 품고 있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지도자 커리어 첫 실패 아픔을 겪은 상처를 말끔하게 지우지 못했다. 각급 대표팀 지도자를 오래했고 클럽 경험은 적은 편이나, 그간 성공·실패 노하우를 K리그 빅클럽 울산에 입혀 전환점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

첫선을 보이는 무대가 월드컵이어서 더욱더 흥미롭다. 6개 대륙(유럽·남미·아시아·북중미·오세아니아·아프리카) 챔프와 개최국 대표 클럽이 나서는 이 대회는 클럽 간의 대회이나,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홍 감독에겐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나서는 심정일 수밖에 없다. 부임 이후 단 2주밖에 동계전지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그로서는 얄궂은 운명이다. 티그레스전을 앞둔 홍 감독은 “멕시코는 (대표팀간 경기에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지난해 11월 평가전 등 한국에 아쉬운 결과를 유독 많이 안긴 팀이다. 전술 운용 능력이나 개인 전술이 뛰어나다”며 “아시아 대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명보
지난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에서 후반 팀의 두 번째 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는 홍명보의 모습. 스포츠서울DB

2002 FIFA 한일월드컵 축구 본선 8강전 한국-스페인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한국의 승리를 확정하는 득점에 성공한 뒤 동료와 기뻐하는 홍명보. 이주상기자

홍 감독은 선수 시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 한·일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특히 한·일월드컵 때 주장 완장을 달고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뛰었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도자로 데뷔한 2006년에도 곧바로 대표팀 코치로 합류해 독일월드컵 본선을 경험했다. 이후 연령별 대표팀 감독직에 앉은 그는 2009 U-20 월드컵 8강 진출을 해내면서 ‘월드컵의 사나이’로 우뚝 섰다. 그러다가 A대표팀을 이끌고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경험했다. 국내에서 선수 및 지도자로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을 홍 감독보다 많이 경험한 이는 없다. 그런 그도 클럽월드컵은 처음이다. 이 대회는 대륙 챔피언이 돼야 출전권을 따낼 수 있기에 홍 감독 축구 인생에서 또다른 도전의 장이다.

티그레스는 멕시코 리가 MX 통산 7회 우승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2년 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당시 한국에 1-2 패배를 안긴 멕시코 대표 일원이 일부 포진해 있다. 발 빠른 윙어 하비에르 아키노를 비롯해 휴고 아얄라, 카를로스 살세도 등이 공·수에 버티고 있다. 최전방 공격진엔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골잡이 앙드레-피에르 지냑이 버티고 있다. 지난 2010~2015년 올랭피크 마르세유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한 그는 이후 멕시코 무대로 옮겨 2015~2016시즌부터 올 시즌 현재까지 6시즌 연속 리그 두자릿수 득점(208경기 126골)에 성공했다. 지난 북중미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골(6경기)을 집어넣으며 국제 대회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홍 감독이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국제 대회 경험치를 실어 티그레스 공격을 무력화할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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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 현대.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홍 감독에게 또다른 동기부여는 큰 규모의 상금이다. 이 대회는 1위부터 7위까지 모두 상금을 준다. 그런데 ‘오세아니아 챔프’ 오클랜드 시티(뉴질랜드)가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면서 울산은 최소 6위를 확보했다. 6위엔 100만 달러가 주어진다. 그러나 울산이 티그레스를 이기면 최소 4위를 확보하면서 200만 달러(22억 원)를 품게 된다. 한 마디로 ‘22억짜리’ 한 판 대결이다. 이 대회 1~3위엔 각각 500만 달러, 400만 달러, 250만 달러가 주어질 예정이다. 5위는 150만 달러다.

한편, 클럽월드컵에서 K리그 팀이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은 지난 2009년 포항 스틸러스의 3위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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