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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10번째 US여자오픈 우승자로 등극한 이정은6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미국골프협회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돈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메이저 퀸’ 지위를 미국 골프 최고 권위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차지한 ‘대세’ 이정은(23·대방건설)의 마음이 그렇다. 이정은은 “솔직히 예전에는 골프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보다 금전적인 수익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것을 목표로 삼고 골프 자체를 즐겨보려 한다”고 선언했다. 스포츠서울 창간 34주년 축하를 위해 인터뷰에 선뜻 응한 이정은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관해 솔직한 얘기를 들려줬다.

◇ 메이저 퀸 부담? 등극하고서야 즐기는 골프

이정은은 20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에 위치한 헤이즐틴 내셔널골프장에서 막을 올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두고 스포츠서울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메이저퀸에 오른 이후 두 대회에서 준우승과 공동 33위로 다소 기복있는 성적을 낸터라 예민할 수도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정은은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US여자오픈 이후 찾아온 변화는 현지 팬이 늘었다는 정도다. 그는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부터 컷 탈락 없이,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자는 게 목표였다. 우승 이후 잇따라 대회가 열려 기쁨을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다. (미국 진출)첫 해에 모든 것을 이뤄내겠다는 욕심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싱거울 수도 있지만 상금왕과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을 노려볼 수도 있는 목표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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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이 28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트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크리스 F&C 제41회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5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캐디와 기뻐하고 있다. 제공 | KLPGA

◇ 여행하는 것 같은 좋은 미국생활, 호텔생활도 만족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즐기는 골프’다. 알려진대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성장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각오로 골프를 시작했다. 스스로는 “어릴 때부터 지는걸 워낙 싫어했다. 승부욕도 강했다. 이런 성격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끔 나를 이끌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근성일 수도 있지만 가난에 지고 싶지 않은 소녀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혹독한 체력훈련도, 강도 높은 기술훈련도 묵묵히 버틸 수 있었던 힘도 절실함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뒤 미국 진출 첫 해 18억원 가량 상금을 따냈으니 격세지감 그 자체다. 이정은은 “소득에 대한 걱정 없이 골프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루키시즌이지만 정해진 거처가 없다. 대회마다 호텔을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단다. 그는 “매 대회마다 짐을 챙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자칫 짐을 들다 허리나 어깨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지만 늘 깨끗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점은 편하다”며 웃었다. 이어 “아직 미국내에서 가보지 않은 지역도 많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 생활을 즐기고 싶다. 매니저(제니퍼 김)와 여행하듯 재미있게 투어를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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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6가 3일(한국시간) 찰스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 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다부진 표정으로 드라이브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LPGA

◇ 노보기엔 콜라, 우승엔 라면. “나에게 주는 선물”

이정은은 지난 3일 US여자오픈 우승 직후 “나에게 주는 선물로 한국 라면을 먹겠다”고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신지애 선배를 만나 프로선수의 자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라면과 탄산음료를 매우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 어려움을 플레이에 녹여 일종의 동기부여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는 “18홀 노보기 플레이를 하면 콜라를, 우승을 하면 라면을 먹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극한의 자기 통제를 해내야만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체득했다. 이정은은 “매 대회 비슷한 패턴과 일정으로 경기를 반복하다보면 지겨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골프는 오롯이 내 자신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서만 결과가 좌우된다. 외부 환경에 따라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게 지치지 않는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켜낼 수 있는 동력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다.

이정은6  1번홀 파세이브후 홀아웃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정은6가 버디를 낚은 뒤 갤러리에게 인사하고 있다. 제공 | 엘앤피코스메틱

◇ ‘온리 식스!’ 올림픽 출전 담아두지는 않을 것

이정은의 이름 뒤에는 항상 ‘6’이 따라다닌다. 메이저퀸에 등극한 뒤에도 이름 뒤에 붙은 ‘식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정은은 “개인적으로 6이라는 숫자가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지만 LPGA투어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정은 선배가 계시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을 위해서는 이름 뒤에 숫자가 붙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정은이라는 발음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선수들과 캐디들이 ‘식스’라고 불러주는 게 너무 재미있고 좋다. 다른 별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세계랭킹 7위(20일 현재)라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식스 열풍’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정은은 “벌써부터 올림픽을 생각하면서 성적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골프선수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접한 선수가 많지 않다.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만 나갈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대회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밝혔다. 굳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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