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LA = 스프츠서울 칼럼니스트] 1990년대 해태 타이거스가 KBO 리그를 평정할 때 특징은 선발 라인업에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늘 톱타자 이순철, 3번 김성한, 클린업히터의 ‘해결사’ 한대화 등이 공격의 주축에 있었다. 실제 야구전문가들도 “라인업의 변화가 없는 게 팀 공격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분석했다. 라인업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공격력이 약해서 나타난 결과 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LA 다저스의 선발 라인업과 대입하면 이 분석은 맞지 않는다. KBO 리그에서 라인업을 가장 자주 바꾼 지도자는 김성근 감독이 으뜸일 것이다. 기자가 태평양 돌핀스를 취재할 당시에도 선발 오더를 짜느라 밤을 새웠다고 했을 정도다. 감독은 선수의 특성을 살려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오더를 짜기 위해 고민한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특정 타순에서 공격의 맥이 끊겼을 경우 해설자는 물론 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현재 메이저리그에도 오더를 짜는데 고민하는 감독이 있다.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46)이 대표적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다. 김 전 감독은 선수층이 얇은 전력을 어떻게 극대화할지로 고민했다면 다저스의 로버츠는 두꺼운 선수층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다저스의 현역 엔트리는 누가 선발 라인업으로 나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층이 두껍다. 다저스는 이기거나 지거나 관계 없이 선발 라인업이 바뀐다. 세이버 매트릭스 기록이 대세가 되면서 모든 팀들이 붙박이 라인업을 고집하지 않지만 로버츠 감독은 유난한 편이다.

16일(한국 시간) FOX-TV로 전국 중계된 방송에서 야구전문기자로 유명한 켄 로젠탈도 매 경기 바뀌는 라인업과 관련해 질문했다. 미국에서는 라인업을 자주 바꾸는 것을 ‘저글링(juggling)’이라고 한다. 저글링은 ‘묘기를 부리다, 곡예를 하다’는 뜻이다. 이 질문에 로버츠 감독은 “우리는 매우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는 게 내가 할 일이며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선수들이 정말 잘 해주고 있다”면서도 “좋은 선수들이 더 필요하다”고 선수 욕심을 드러냈다. 다저스는 6명이 홈런 20개 이상을 치고 있다. 맷 켐프(19개)도 곧 20홈런 대열에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홈런 20개 이상 6명은 다저스가 지난해 세운 팀 기록이다.

MLB에서는 감독의 능력 가운데 하나가 25명 엔트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2016시즌이 시작되기 전 스포츠 전문 사이트 ESPN 조사에 따르면 볼티모어 벅 쇼월터, 샌프란시스코 브루스 보치, 오클랜드 봅 멜빈, 시카고 컵스 조 매든, 피츠버그 클린트 허들 감독 등이 순위에 올라 있었다. 쇼월터는 올해 팀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으로 스타일을 구겼다.

로버츠 감독의 매 경기 라인업 변화는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단 사장의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탬파베이 시절 최연소 단장을 역임했던 프리드먼은 멀티 포지션과 선발 투수에 따른 오더 교체가 몸에 배어 있는 프런트맨이다. 프리드먼 체제에서 로버츠 감독은 대리인 격이다. 탬파베이와 다른 것은 다저스는 자금이 풍부해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다저스에서는 올해 5명이 톱타자로 나섰다. 라인업의 주축인 3번에는 9명이 등장했다. 4번 클린업히터에는 7명이 나섰다. 슈퍼 유틸리티맨 키케 에르난데스는 9번 타자를 제외하고 1번부터 8번까지 타순을 맡았다. 프리드먼 사장의 취향에 딱 맞는 선수다.

그러나 매 경기 라인업 교체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공격 타이틀 1위 등극이 어렵다는 점이다. 올시즌 다저스가 발굴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 좌타자 맥스 먼시(28)는 홈런 32개로 홈런 더비 공동 6위에 랭크돼 있다. 1위는 세인트루이스의 맷 카펜터(35개)다. 오클랜드에서 방출돼 야구를 포기하려고 했던 먼시는 올해 트리플A에서 승격돼 팀내 최다 홈런을 때리고 있다. 먼시는 홈런 25개 이상을 날린 17명의 타자 가운데 타수(357)가 가장 적다. 좌완투수가 나오면 라인업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2004년 애드리언 벨트레(48개) 이후 홈런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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