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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이모양이 쓴 ‘학원가기 싫은 날’’


[스포츠서울]최근 수년새 독자들에게 이토록 화제를 모은 시가 있었을까? 기억이 맞다면 없다. 요 며칠 네티즌 사이에 설전이 뜨거운 이른바 ‘잔혹 동시’ 이야기다.

초등학교 2학년 이모양이 쓴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눈깔을 파먹어/이빨을 다 뽑아 버려/머리채를 쥐어뜯어/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가장 고통스럽게’

시를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잔혹하다”, “아이의 정신이 걱정된다”, “패륜적이다”, “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다”는 등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일부 종교계에서는 ‘사탄같다’는 지적까지 나왔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자 시집을 출간한 가문비출판사는 해당 시가 수록된 시집 ‘솔로 강아지’를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양의 부모는 “학원 가기 싫은 마음을 아이가 표현한 것이다. 그 시를 읽고 학원을 줄였다. 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면서 법원에 시집 폐기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비난이 계속 쏟아지자 최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고 폐기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이양 부모의 말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부모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엄마를 잡아먹고 싶을 만큼 학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시를 보고 학원을 그만두게 하고 시집을 내준 아이의 부모는 그 누구보다 좋은 부모라고 여겨진다. 내가 어떻게 해도 나의 부모가 나를 온전히 받아준다는 믿음을 가져야만 아이는 자신을 억누르지 않고 자유롭게 성장해 세상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시가 잔혹해서 싫다고? 내 자녀들에게 보여주면 나쁜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수학을 선행학습시키고, 하루 종일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고, 적성과 관계없이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더 잔혹하고 나쁜 것은 아닐까?

여기에 더해 이양은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가 죽은 시대에 온 국민이 읽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시를 썼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최근 그 어느 기성 시인의 시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있나.

시집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 시집이 폐기되고 나면 세상이 좋아질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세상이 나빠지는 것은 팔짱 끼고 방관하면서, 그런 세상을 보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조숙한 어린 시인의 눈을 가린들 무엇이 달라질까.

결과적으로 이양은 자유로운 사회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이 실상 매우 경직돼 있고 획일화된 사회라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주는 역할까지 했다.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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